2021.05.10 00:03

애무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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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친구 엄마로부터 배운 애무의 정의는 사랑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리고 야광기술에서 배운 애무는 만짐을 넘어 의식의 섞임까지 아우르는 단어였다.



(비록 첫 수업은 결석했지만)

애무 수업을 듣고 나서야 아주 오랫동안 막연하기만 했던 부모님에 대한 서운함, 분노, 아쉬움의 정체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아빠한테 작정하고 전화로 30분을 넘게 울면서 서운함을 푼 적이 있다. 그날 얘기한 오래 묵은 감정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딱 5분만이라도 나한테 관심을 좀 가져줬으면.” 이었다.


아빠의 답은 “아빠의 마음은 절대 그러한 게 아닌데…” 였다.

그리고 내 기억엔 없지만(아마 무의식에 묻어뒀겠지) 어릴 때 아빠가 비행기에서 심하게 신경질을 내고 화를 낸 일에 대해 얘기했다. 어린 너한테 괜히 화풀이 해서 미안하다- 는 아니고 아빠는 본인이 그렇게 한 게 계속 생각이 난다고 했다.




부모님에 대해 늘 느낀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


엄마에 대해 늘 느낀 무겁게 가라앉아 끓는 복잡한 감정


아빠에 대해 늘 바랬던 5분의 관심 그리고 나도 갑자기 아빠에게 버럭 내는 짜증




이 세 줄을 다시 요약하자면 “애무의 부재”였다.

내가 바랬던 것은 애무였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의식의 닿음이었다.

평생 나를 가장 아프게 한 것은 이 애무의 부재로 인한 좌절이었다. 정말 많은 것들이 애무의 부재로 설명이 가능하다.



따뜻한 말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어루만져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와 부모의 의식이 섞여지기를, 부드러운 온기를 나눌 수 있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원했다. 그저 당장 눈 앞에 있는 자식의 눈을 바라보고 거기에 의식을 두고 이입하기. 근데 슬프게도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정말 바라는 애무가 채워지지 않을 때마다 겪어야 했던 좌절.



그게 내 안에 가득 쌓인 짐이었고 내면은 애정결핍에 시달리다 못해 아사 직전까지 갔다.

한마디로 마음 둘 곳이 전혀 없던 긴 시간을 살아왔다.



내가 본 부모님의 모습은 하나의 팀이라기보다는 늘 전쟁을 치르는 적국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동맹의 결속력은 금방 깨지곤 했다. 아침의 온도와 저녁의 온도가 다르고 어제의 온도와 또 오늘의 온도가 다른 불안정한 집안의 공기. 예측할 수 없는 엄마의 온도까지. 그래서인지 꽤 어릴 때부터 나는 집에 오면 그냥 방에 쏙 들어가 홀로 조용히 책을 읽곤 했다.

혹은 침대에 누워 가만히 있기. 움직이지 않고 방에서 책을 보는 게 밖에서 일어나는 전투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부모님과 내가 완전히 남남처럼 살아온 건 아니다. 찰나의 순간 정도는 우리가 가족이라는걸 느끼고 사랑도 느꼈다. 다만 계속 이 겉도는 관계, 깊숙이 서로에게 침투하지 못하는 존나 먼 이 거리가 늘 막막함과 좌절을 내 안에 쌓이게 했다.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심하게 아팠었다.

팔꿈치 살이 썩어서 옷을 입으면 누렇고 검은 진물이 천에 스며들어 나왔고 길에 나가면 사람들이 나병환자 보듯이 내 얼굴을 쳐다보며 수군댔다. 전신에 면역질환 피부병이 그렇게 왔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그만두면 뭘 할건데? 치료하고 다시 복귀하면 그만이다. 너만 아픈 거 아니다를 불경처럼 외웠다. 그게 그렇게 서운해서 혼자 이불 뒤집어 쓰고 운 날이 많았다.



내가 느낀 끝없는 절망과 좌절, 애무의 부재.



스스로를 마치 바닷가에 떠다니는 끈 떨어진 양식장 스티로폼 부표처럼 무가치하다 생각하며 외롭게 느껴온 데에는 이유가 이렇게 있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명상을 하면서 끊임없이 탐구했던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 혹은 내면아이, 세션 기버에게 들었던 “너는 과거로부터 진 짐이 너무 많다.” 라는 말. 이것도 이제는 전부 애무의 부재로 인한 수 만 번의 좌절로 설명될 수 있다. 그래서 그 애무를 채우러 회사를 떠나 외국으로 나가야만 했던 것이다.




사실 퇴사 이후 해외를 돌아다닌 건 처음엔 그저 단순히 놀아보기 위해서였고, 그 경험을 통해 오랫동안 쌓인 좌절을 어느 정도 상쇄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나는 애무가 필요함을 알고 있었고 최대한 애무가 풍족하게 가능한 장소로 스스로를 움직였던 것 같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문어다리 같은 내 촉수를 뻗어도 잘려나가지 않는 안전한 공간에서 내면의 그 허기짐을 일정 부분 해소하는 과정을 체험하게 됐다.




그리고 밤비쌤하고 대화를 통해 발견한 나의 이상 증세, 사람들에게 내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목을 옥죄이는 것도 애무의 부재와 관련이 있다. 엄마는 내 말투가 싸가지가 없고 불손하다며 어린 시절부터 나를 많이 혼냈는데 그 처벌 방식이 바로 분리였다. 일단 그녀 기준에서 내가 잘못을 하면 일정 강도의 폭력과 함께 집 밖으로 장시간 내쫓거나 혹은 집에 있어도 나를 투명인간처럼 대하는 게 그녀의 교육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굉장히 부부싸움이 잦은 편이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었다가 내일은 다시 동지가 되는 행위의 반복.


엄마 자체도 매우 감정적으로 불안한 성격.


아빠는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독고다이.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뭔가 감정 표현을 하려고 하거나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면 늘 목이 막히고 무섭고 눈물부터 쏟아지기 일쑤였다. 하나뿐인 동생도 나랑 비슷했다. 그래서 우리 남매는 부모님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제대로 나눠보지 못했다.



이건 클리오르로 치면 딱 한번이라도 임계선을 좀 같이 넘어 보려고 수 만 번 훈련하고 바랐는데 임계선은 커녕 발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나의 좌절된 욕구들과 분노는 태산처럼 무겁게 내면에 쌓여 사고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좌절이 무서운 동시에 또 너무나 오랜 반복으로 익숙해진 아이러니한 상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



애무의 부재로 인해 쌓인 좌절은 내가 운동을 싫어하는 것도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일단 기구를 어떻게 만져야 하는 지 처음에는 전혀 감이 안 왔다. 기구는 물론이요 몸도 어떻게 움직여야 할 지 모를 때가 많다.

그리고 뭔가 할 때마다 원하는 만큼 안 느껴지고 아명 시 근육이 발기가 안 되는 것도 좌절이다. 그럴 때마다 쌓인 좌절을 자꾸 보게 돼서 움직이기 싫다. 요새는 이 좌절을 실험이라고 생각하고 점차 개선해나가고 있긴 하다.



또한 애무의 부재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 취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내가 유독 성적으로 끌리고 좋아했던 남자들은 작은 틀에서는 아빠의 변형이지만 큰 틀로 보면 저마다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을 가진 사람들로 이미 시작부터 나를 좌절시킬 가능성이 다분했다.



신부님은 신분부터 좌절이며 외국 나가서 좋아했던 유부남들, 특히 나보다 열 살은 더 어리고 온 몸이 문신으로 덮인 마약과 연관된 멕시코 소년까지. 뭘 해도 씨바 결과값이 이미 좌절이야. 그럴 때마다 도대체 난 왜 이럴까 자책하고 감정을 억누르고 답을 찾아 분석을 끝없이 하던 시간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쌓인 좌절이 난생 처음 해소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신부님과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끝내 미워하지 못한 이유도 설명이 된다. 우리 둘은 사실은 같은 욕구,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나를 온전히 받아주며 변하지 않을 내 편이 필요했던 지독하게 외롭고 불완전한 두 인간의 만남.

그는 안정감이라는 생경한 느낌과 내가 그토록 원했던 ‘받아들여짐’을 잠시 맛보게 해 줬다. 뭐랄까 처음 만나는 견고한 내 편, 동맹, 도원결의를 맺은 형제의 느낌. 나중의 결말은 핵폭탄이지만 적어도 시작과 중간에는 그러했다.



언젠가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내가 20대에 너무 숱한 방황을 거치면서 정말 힘들었는데 혜정이 너는 그렇게 안 되게끔 뭐든지 다 할거야. 무슨 말이든 다 들어주고 내가 아는 걸 전부 다 가르쳐줄게. 너는 진창을 덜 밟아야지. 내가 곁에 있어줄게.” 이 얼마나 든든한가.



마음 둘 곳 없이 망망대해를 떠도는 해양쓰레기 부표 같던 내게 누군가가 갑자기 구명보트를 타고 나타난 셈이었다. 할렐루야, 드디어 구조되는군요! 하지만 이 기쁨과 안도감은 역사상 최고 절망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으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절연하는 게 맞다는 이성적인 결론을 몇 천 번 내리고 굳게 다짐해도


다시는 해양쓰레기로 떠돌고 싶지 않다는 욕구,

혼자 분리되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너무 커서 그렇게 오랜 시간 집착을 내려놓지 못한 것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나 애무는 내게 목숨과도 같았다.






하..

일단 이렇게 글을 쓰니까 후련하다. 그리고 가벼워졌다.


밤비쌤하고 나의 카톡방 공지는 ‘좌절 절대 금지!’로 설정되어 있다. 선생님은 좌절할 시간이 없고 해결책을 여러 방안으로 찾아가는 게 정말 재미있다며 좌절로 자꾸 떨어지는 내 사고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셨다. 그래서 거기에 나도 부응하기 위해 힘들지만 이 글을 썼다. 평생 쓴 모든 글 중에 가장 힘들게 썼다.



이 글은 바디빌딩 수업 후 별다른 질문도 없고 운동일지에는 수업 내용만 적은 내 상태에 대해 궁금해하던 선생님의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또한 통화를 하면 종종 내가 말없이 듣고만 있던 상태를 이상하다고 느낀 선생님의 ‘관찰력’도 큰 도움이 됐다. 중간 중간 개인적으로 제출한 대화 과제에 대한 선생님의 딸기밭 피드백도 이 글을 쓰는데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그냥 처음에는 운동 이야기로 시작해 솔직하게 선생님이랑 대화하며 발견한 내면의 보물섬 혹은 거대핵폭탄 암초는 바로 ‘좌절(절망)’이었다. 그리고 이 좌절의 근본 원인이 애무 수업을 통해 마침내 밝혀지게 됐다. 운동회 때 하는 박 터뜨리기 게임에 비유하자면 정말 오랜 시간에 걸쳐 콩주머니를 던지며 내면의 박을 쪼개려고 시도했는데 막판에 야광기술 애무 콩주머니가 딱 명중하면서 깃발이 촤르르 내려온 것과 같다.



깃발의 답은 생각지도 못한 <애무(의식의 닿음)>이였다.






자 이제 박은 터졌고 암초의 정체가 밝혀졌다.


좌절과 절망 무기력 외로움의 암초. 그 암초의 생성 원인은 거의 평생에 걸친 애무의 부재였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의 방향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답은 나왔다. ‘애무’




그것을 스스로에게 채워주고 싶다. 인생을 넓게 넓게 내가 가진 피부와 살 근육을 전부 써서 맛보고 싶고 정말 깊게 세상과 연결되는 체험을 해 보고 싶다. 그래서 더 이상 망망대해를 떠도는 쓰레기 부표라고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누구와 함께 할 때 가장 애무가 잘 되는지를 실험해보고 관찰해보며 움직이려고 한다.



모든 초점을 좌절이 아니라 애무에 맞추면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내가 탄 배가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좌절의 무게에 짓눌려 그냥 빨리 죽을까 생각하고, 뭘 해도 우왕좌왕했다면 앞으로는 세상을 애무하며 살고 싶어졌다. 물론 늘 내 생각에 빠져있는 패턴, 자의식과잉, 가만히 있기를 즐기는 습성도 개선해야 한다.




이렇게 보니 나는 사실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실체가 너무 모호해서 혹은 너무 아득해서 보이지 않았을 뿐.


나는 애무가 필요했고 애무를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특정인과의 애무가 아닌 세상과의 애무.


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애무할 것인가를 탐구할 단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기쁘다. 그리고 새롭다.



=======================================================================================



이 아득한 것을 마침내 보게 해 준 야광기술 ‘애무’ 수업이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 



늘 초고화질 화소로 교육생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질문을 하는 밤비 선생님께도 이 글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긴 글을 끝까지 읽어준 해적 여러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글을 읽어준 다정한 해적들의 초점은 현재 무엇에 맞춰져 있을까 매우 궁금해지네요.



  • ?
    wi 2021.05.10 09:27
     
  • profile
    브리 2021.05.10 13:37
    to : wi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애무의 기억으로 살아간다 라고 톨스토이 할배한테 문자 보내고 싶어요


  • profile
    금선 2021.05.10 12:54
    호기심이 생겨서 질문 드려요.

    연이은 좌절과 애무의 부재.

    그리고 그것은 곧 분리된 부표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브리님은 남들의 얼굴을 보면

    (과하게 거울 뉴런이 발동해서) 심적으로 힘들었을까요?

    저는 사람 얼굴을 보면 너무나 많은 감정이 느껴져서

    얼굴 보는 걸 피하는 편이에요. (전에 말씀 드린 적이 있죠?)

    저도 어렸을 때 몇몇 좌절의 기억이 있지만

    애무는 나름 충족됐던 거 같아요.

    브리님 말씀대로 부표였다면

    타인을 봐도 무언가 전혀 공감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 profile
    브리 2021.05.10 14:15
    to : 금선

    질문의 요지가 애무의 부재가 이렇게 커서 스스로를 부표에 비유한 사람인데 어떻게 타인에게 공감을 잘 할 수 있는가 인가요?




    일단 부표라는 단어는 저의 주관적인 감정과 상태를 표현한 단어에요. 그렇지만 제가 물리적으로 사회와 완전 단절돼서 히키코모리로 살아온 건 아니구요. 아무리 갖은 짓을 해도 채워지지 않던 그 무언가가 있기에 스스로를 부표라고 느낀 거에요.




    거울 뉴런 관련해서 제가 책에서 읽은 내용을 인용하자면, 불안정한 양육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양육자의 사소한 상태 변화에도 굉장히 민감해진다는 내용이 있어요. 얼른 변화를 느껴내야 도망을 가든지 어떻게든 대처를 하니까요. 


    저 역시도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느낍니다. 이게 습관이 되면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 대해 예민해진다고 생각해요. 또 부모님한테 이입해서 이해해보려는 시도가 쌓여서 그랬을수도 있고요.


    그런데 한편 드는 생각은.. 저는 공감 보다는 전이가 잘 되는 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궁금증이 좀 해소가 되셨을까요?



     

  • profile
    금선 2021.05.10 18:35
    to : 브리

     완전히 해소되었어요! ㅎㅎㅎ 


    제가 ‘부표’라는 비유를 너무 물리적으로 해석했나봐요. 


    그리고 


    저 역시 상대방 눈치를 많이 봐야하는 막내로 태어나다보니


    (그리고 어렸을 때 부모님을 제외하고 다른 어른들 사이에서 이쁨을 잘 못 받아서)


    거울 뉴런이 발달한 것 같아요. 


    저도 이제 그 전이되는 걸 많이 줄이고


    사람 얼굴을 당당하게 보고 싶어요

  • profile
    브리 2021.05.10 22:16
    to : 금선

    궁금증이 풀리셨다니 다행이에요 :)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막내라면, 그것도 아들이라면 온 식구가 부둥부둥 예뻐했을 것 같은데... 


    막내 금선님은 왜 눈치를 보셨나요?

  • profile
    금선 2021.05.11 11:57
    to : 브리
    막내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부터 철이 일찍 들어버렸어요.

    엄마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어렵게 살림하는 것을 보면서
    엄마에게 무엇이든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그만큼 제가 원하는 걸 할 수 없었던 경우가 많았어요.
    (당연히 제 위에 누나들보다 제가 누린 게 더 많겠지만)

    그러다보니 눈치를 봤던 것 같네요 ㅎㅎㅎ
  • profile
    밤비 2021.05.11 11:35
    to : 금선
    금선님 댓글에 상당히 의아해집니다.

    대화하는 동안에 상대방 눈동자를 유난히 뚫어져라 쳐다보는 딱 세 사람이 있었고, 그 중 한 명이 금선님이거든요.

    그런데 상대방 바라보는 것을 잘 못하겠다니...
  • profile
    금선 2021.05.11 11:54
    to : 밤비

    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 좋아합니다 ㅎㅎㅎ


    대화할 때는 제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집중하고 몰입합니다. 


    그런데 간단한 대화나 일하면서 지나치는 분들과는 


    긴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드물죠. 


    그럴 때는 얼굴을 잘 안 쳐다봤습니다 ㅋㅋ 


    하지만 앉아서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면 


    무조건 눈동자 너머로 그 분의 정신세계에 몰입합니다. 

  • profile
    금선 2021.05.10 18:21
    (원래 위 댓글과 연달아 쓰려고 했는데 뒤늦게 써요~)
     

    제가 경험했던 ‘좌절’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야기가 길지만 최대한 간결하게 써보겠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욕망했지만


    원했던 만큼 이루지 못한...


    그 드높은 욕망을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제 욕심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경우예요.





    미국에서 학부공부를 3년 반 마치고


    정말 좋은 약대에 입학했어요.


    그때는 제 머리로 미래가 창창한 직업을 갖고


    값비싼 차와 집 그리고 영주권을 받고 싶었어요.


    남들한테도 멋있어보이고 명예와 부를 한 번에 획득하는 방법이라 믿었죠.


    그런데 첫 학기 때부터 ‘이건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코 중간에 포기할 수 없었어요. 너무 오랜시간동안 제 시간과 피나는 노력을 쏟았으니까요.


    이왕 들어온 거 잘 끝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근데 정말 안 맞았어요 저랑 ㅎㅎㅎ)


    그러다가 약대 2년차에 미국에서 학자금 대출이 문제가 생겼고


    보증인을 찾느라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부탁하고


    미국에 있는 팔촌에 먼 친척까지 찾아서 애원했는데


    결국엔 안 됐습니다.





    나름 잘 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무너져버리니까


    처음에는 좌절하고 개탄스러웠는데


    점점 홀가분해졌어요.


    ‘그래, 이제 내 인생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마음대로 살아야지.’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쭈우우욱 왔어요.


    그 중간에 밤비쌤을 만난 건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고요.




    재밌는 건


    좌절 후에 제 마음대로 저지르는 (방종 아님) 삶을 사는게


    상당한 설렘과 재미가 있었어요.




    더럽게 힘들 때도 있었지만


    지금도 가끔 좌절을 경험하지만


    저는 그때 약대 중퇴가 없었다면


    고만고만한, 교과서 같은 삶을 살았을 거예요.

     

     

     

    ps 사실, 군대 전역 후 다시 약대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됐는데 

    돌아가지 않고 그냥 빠빠이 하기로 했어요. 

    어쩌면 학자금에 문제가 생겼던 게 

    저한테는 도움이 되는 일이었던 거죠..! (일종의 전화위복)

  • profile
    브리 2021.05.10 22:19
    to : 금선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니!! 


    이것도 거의 시나리오 감 아닌가요? 근데 그 목표가 좌절된 그 시기에는 너무 아프셨겠어요.



    지금은 이 좌절에서 많이 벗어나셨을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온 세상이 배신을 때리는 느낌을 온 몸으로 느끼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그래도 지금 행복하면 된 거죠?






  • profile
    금선 2021.05.11 12:00
    to : 브리
    그 당시에는 타격이 상당했죠.

    군입대를 하고 나서도 그 문제에 관해서
    정말 많이 생각하느라
    고통스러울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홀랑 벗어던지고 나니 엄청 홀가분하고
    '지금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거만 할테닷'
    이 정신으로 계속 지냈어요.

    행복은, 아주 가끔 찾아오는 것이지만
    평소 제가 원하는 것을 눈에 보일 수 있게 실현하는 게
    제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 profile
    공기 2021.05.11 02:44
    to : 금선

    아 금선님 이런 사연이 있으신 줄은 몰랐네요.


     온전히 나의 의지만이 아닌 외부의 영향으로 좌절하시고 진로를 변경하시게 되셨었다니...진짜 힘드셨겠어요.

    내가 오랜기간 목표로 했던 일이 내가 어찌할 수도 없는 힘으로 좌절되었을 때의 그 실망감과 분노 허탈함이란....



    제가 대학 들어가서 깜짝 놀랐던 게 뭐였냐면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 대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이었어요. 


    입학하자마자 너 여기 왜 들어왔어? 물어봤을 때 개발이나 연구를 하고싶다던지 특정한 목표가 있는경우가 많았어요. 


    그렇지만 대부분 졸업 후의 진로를 보면 정말 다 똑같이 고만고만한 삶을 너무나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살고 있지요. 제 동기 중 딱 한 명만이 금선님과 같은 진짜 살아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좌절이나 슬럼프가 오히려 이후 인생을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된다는 게 진짜  신기하네요. 다들 비슷한 경험이 떠오르시지 않을까싶어요.ㅎㅎ


  • profile
    금선 2021.05.11 12:03
    to : 공기
    그래서 슬럼프 혹은 '암초'를 꼭 발견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라면 무조건 있거든요.

    땅에서 우리를 잡아당기는 중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큰 힘을 땅바닥에서 뽑아낼 수 있잖아요.
  • profile
    밤비 2021.05.10 23:52
    30시간의 이론수업 동안에 개인적인 질문을 한 번도 묻지 않는 교육생들이 대부분이고,

    알고 지내는 3년의 시간 동안 제게 먼저 전화나 카톡을 해온 적이 거의 없는 지인도 있었습니다.

    믿어지지가 않지요?

    저도 꿈만 같아요.




    바로 그 거리감 사이에 섹스의 본질이 담겨 있다는 것을 차마 이야기해주지 못하고 넘어간 경우가 몇 백 건이 넘습니다.


    침대 안에서의 문제는 침대 밖에서도 고스란히 발생한다는 것을,

    침대 안에서의 5르가즘은 집 바깥 그리고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고스란히 펼쳐질 수밖에 없음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응용하려는 경우가 왜 그토록 드문지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모두가 지옥에 적응하며 잘도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브리님은 지옥에 적응하기를 온 몸으로 거부하며 살아오고 있었나 봅니다.

    가짜들에 적응하기를 거부하는 자만이 오르가즘을 온 몸으로 습득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브리님이 몸소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한동안 계속 이렇게 진짜 움직임으로 하루하루를 가득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 profile
    브리 2021.05.11 09:41
    to : 밤비
    어제 바디빌딩 수업 중에 강조하신 게 있죠 ^^

    "지금 고전문학 읽을 시간이 어딨어요!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브리님은 운동하고 글만 써야 돼욧!"


    당분간은 최대한 그럴 거에요 ㅎㅎ



    그리고 어제 편의점에서 쌍화탕 마시면서 나눈 대화도 오래 생각날 것 같아요. 그 시간과 쌍화탕의 따뜻한 밀도가 좋았거든요.


    이 중요한 애무 수업을, 야광기술 핵심 과목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주기를 저도 소망합니다. 


    섹스가 단지 섹스가 아님을, 운동이 운동이 아님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 profile
    공기 2021.05.11 02:23
    와 브리님 우선 축하부터 드릴게요!
    드디어....가장 큰 암초대마왕 한탄과 좌절의 가장 큰 원인을 알아내셨네요. 그동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드셨을까요? 그리고 지금은 또 얼마나 후련하실까요?

    애무의 부재.

    거의 모든 것들의 문제를 이 개념으로 압축할 수도 있을것 같아요.

    브리님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애무의 부재로 몸살을 앓는가봐요.
    점점 늘어가는 반려 동물 수와 또한 더더욱 늘어가는 유기 동물들의 숫자를 보면 더 와닿아요. 아. 참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얻을 수 없는 의식의 애무를 우리는 동물들에게서라도 의지하게 되는구나 하구요.

    야광기술을 찾고 또 계속해서 탐구하고 포기하지 않으신 것은 브리님 안에 죽지않고 살아있던 탐구심과 끈기 불굴의 의지 덕분인것 같습니다. 진짜 대단하고 멋있어요!
    앞으로 브리님이 세상과의 애무를 어떻게 해나가게 되실지 저또한 너무 궁금해요.
    ㅎㅎ

    저는 요즘은 음 집중력을 한 곳으로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중이에요.
    좋아하던 일도 사실 집중이 썩 잘되진 않네요. 잠깐은 하는데 그 흥미가 유지되지 않고 궤도에 안정적으로 오르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거든요.
  • profile
    브리 2021.05.11 09:45
    to : 공기

    yeah~~~~  드디어 찾았어요 애무의 부재! 후련합니다.




    그리고 공기님 말씀처럼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애무의 부재로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당장 저도 강아지가 거의 분신이거든요.




    집중력을 한 곳으로 모으려면. . 운동처럼 집중력 발기시간을 꾸준히 높여가야 하지 않을까요? 혹은 좋아하는 일을 해도 집중이 흐트러지는 근본 암초와 그 생성 원인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 profile
    미야 2021.05.11 18:06
    브리님! 이 글을 읽는데 제가 왜 먹먹하고 눈물이 차오르는지 모르겠어요.

    이 암초를 해결하시기까지 얼마나 숨막히는 바닷속에 들어가 그 암초를 비집고 들어가 그 괴로움을 다시 느끼고 원인을 찾아서 꺼내어 올라오셨을까요!


    저도 깊고도 깊은곳에 뭍고 지냈던 암초들에 대해서 질문해 보아야 겠다는 용기가 브리님의 글을 읽고 생겼어요.


    정말 용기있는 여전사 브리님! 글만 읽어도 후련함이 느껴집니다!
    저는 왜 암초를 피하고 숨기기만 했는지
    야광수업을 안들었으면 평생 못해볼 질문이였던것같고
    브리님과 같은 해적단 분들 덕분에 한층 더 인생에 많은것들을 배우고 있어요.



    이 소중한 이야기를 글로 해적선에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좋은 사람들과의 애무길만 걸으세요 >_< 사랑합니다~!
  • profile
    브리 2021.05.11 22:25
    to : 미야
    애무길~~ ㅎㅎ 감사합니당 ^^

    미야님의 암초도 어쩌면 부모님과 연관이 되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걸 생각하고 재체험하고 마주하는 과정은 매우 힘들지만 한번 정체를 밝혀내면 많이 편해져요.

    이 가벼워짐을 미야님도 체험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중에 애무 수업을 들어보시면 암초 작업에 당근 큰 도움, 지지대가 될 것이니 기대하셔도 좋아요!

  • profile
    리얼리리 2021.08.17 03:15
    애무의부재

    부모님이 저희부모님과비슷하셔서
    저도 애무의부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좋은글 나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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