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놀이

by 브리 posted Apr 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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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서 언제 처음으로 술을 목구멍으로 넘겨 보았을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몰래 술을 처음 마신 시기는 생생하게 마치 어제의 일처럼 기억이 난다 ^^





내 나이 열다섯 살,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학교의 구역을 나눠 학생들이 청소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우리 반은 정기적으로 가정실습실을 청소하는 당번을 맡았었다. 그래서 특정 번호대의 ‘여자’ 학생들이 순번을 나눠 그 공간을 청소했고 나는 그곳에서 정체불명의 액체 ‘미림’ 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


맑고 투명한 연노랑의 그것.


우리 집 양념통에 없던 그것.


아마도 엄마가 어딘가에 숨겨놓았을 그것.


내가 처음 보는 그 미림이라는 것이 살짝 단 맛이 나는 요리용 술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호기심이 왕성한 이 열 다섯 살의 소녀들은 공개적인 그 공간에 놓여있던 액체 미림을 기어코 가만히 두지 않았다. 어느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잘 모르지만 나와 내 친구들은 청소 당번이 돌아오면 몰래 미림을 조금씩 마시고 거기에 마신 만큼 물을 타 넣는 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굉장히 주도면밀해야 하는 작전이었다.



왜? 들키면 뒈지니까!



아~ 더운 여름에 청소하다가 몰래 숨어서 홀짝 마시는 미림의 맛이란!! 치얼스!



우리는 낄낄대며 그 미림을 아주 조금씩 마시고 적정량의 물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겠지 하며 꽤 오랫동안 조심스레 작전을 이어나갔다. 그 미림 덕분에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주어진 청소의 의무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한 모금의 미림이 보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날 선생님이 그 미림들을 한꺼번에 싹 치워버림으로써 우리의 미림 작전도 아쉽게도 끝이 나버렸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술을 마시는 즐거움을 알아버린 이상 절대로 포기할 나와 내 친구들이 아니었다.



열 다섯 살은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좀 정신이 이상해지는 나이인가?



하지 말라는 짓은 그 열 배로 백 배로 하고 싶어지는 나이였다.

일진도 양아치도 아닌 교복치마가 길었던 평범한 소녀들은 그만 야금야금 마시는 달콤한 술 맛에 눈을 떠버렸다. 하지만 미림은 사라졌고 우리는 술을 구할 방도를 찾아야 했다. 그러면 어떻게 했을까? 해결책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우리는 교복을 입고 대낮에 수퍼에서


대놓고 술을 사기로 했다.


주도자는 누구? 나였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어느 초여름,  나는 창가에 기대어 무료하게 나뭇잎에 햇빛이 은빛으로 반사되는 움직임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나도 심심하고 지루했던 나의 시야에 별안간 학교 바로 앞에 있던 작은 수퍼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생각.


술을 사서 학교에서 마셔볼까? 마셔보자!


다소 발칙한 아이디어였지만 난 꼭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진짜 단순하게 못 사면 그만이지 하면서 절친했던 미현에게 내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나가서,

같이,

술을 사 오는거야!



미현이는 나의 계획에 적극 동의를 했다. 그 길로 우리 둘은 주머니에 코 묻은 몇 천원을 찔러 넣고(맥주 가격 모름) 손을 잡고 학교 밖을 나가 당당히 수퍼로 향했다. 뭐 간단했다. 우리는 순진한 얼굴로 수퍼 주인 아줌마한테 가서 연기를 시작했고 약간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수수한 미소는 덤으로 드렸다.



“저기… 아줌마 안녕하세요~ 저희 과학 수업 시간에 맥주가 실험 재료로 급하게 필요해서 선생님 심부름을 나왔어요~”


“무슨 발효랑 알코올 관련된 내용인데 선생님이 저희한테 부탁을 하셨어요 지금 꼬옥 사가야 해요 ^^”



대사는 좀 틀릴지도 모르지만 대충 이러한 뉘앙스였다.

우리 둘은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쓰고 치아 교정기를 꼈으며 얼굴에 화장기는 없이 단정한 교복을 입은 여중생들이었다. 미현이랑 나는 속으론 무척 긴장했지만 겉으론 티를 내지 않고 눈빛으로 아줌마를 설득했다. 수퍼 주인인 아줌마는 미심쩍은 얼굴로 우리를 보더니 별 질문 없이 맥주 세 캔을 검은 비닐 봉다리에 담아줬다.



‘나이-스!’



돈을 내고 맥주를 받기. 간단했다. 우리는 한 건 해냈다는 생각에 속이 다 시원했다. 맥주 겟!!!

그렇게 뱃속에서부터 미친 듯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도시락 폭탄 품은 열사마냥 맥주를 소중히 품에 끌어안은 채 바로 반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전리품인 그 맥주 세 캔을 소수의 친구들끼리 낄낄대며 창가에서 몰래 나눠 마셨다.



세상에 이렇게 맥주가 맛있다니!!!


꺄악 씨발 존나 맛있구나야!



어찌나 시원하고 통쾌하게 존나 맛있던지. 맥주를 똑 따서 벌컥벌컥 교실에서 마시니까 곧바로 가슴이 시원하게 뚫렸다. 그렇게 맥주를 신나게 나눠 마시고 수업 시간이 되자 우리는 조용히 학생의 본분을 다 하며 졸지 않고 공부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줌마가 속은 건지 속아준 건지는 모르겠다.

벌건 대낮에 바로 학교에서 나온 모범생처럼 보이는 학생 둘이 와서 맥주를 달라고 하는 일을 그녀는 겪어본 적이 있을까?

아니면 날도 더운데 긴가민가 한 상태에서 괜한 일에 얽히기 싫거나 혹은 귀찮아서 팔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그 아줌마가



“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어디서 약을 팔아! 지랄하지마!”



하면서 귀를 잡아 끌어 학생주임에게 넘겼으면 지금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잠시 상상했다. 아마 우리 부모님은 내 머리를 밀어버리거나 미국이나 호주의 시골로 유학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이렇게 해서 유학이나 갈걸. 아무튼 맥주 작전은 성공했다. 하지만 계속 수퍼 주인 아줌마한테 약을 팔 순 없었다. 우리의 대사는 딱 일회용이었다. 그래도 술은 계속 마셔야지.


재미있잖아.


재미있어도 너~~무 재미있잖아!!

몰래 배운 술은 맛도 있지만 소녀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해줬다. 우리 무리는 머리를 모아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재미있는 짓을 멈추기 싫으니 계속 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술을 어떻게 해야 학교에서 계속 마실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와 친구들은 집에서 술을 훔쳐오기로 했다. 일단 성공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공평하게 모두가 나눠 마시는 작전이었다.



정말 왜 그랬을까?



훔쳐서 몰래, 왜, 하필 학교에서 술을 마셨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짓은 너무 재미지고 속이 후련해지며 게다가 통쾌하기까지 했다.


왜 이게 통쾌했을까?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는 아무도 몰랐지만 모두 미치도록 화가 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좆 같은 학교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에게 인간다운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 사회에 대해서. 우리를 가두는 이 답답하고 좁은 짐승 우리 같은 공간에 대해 화가 나서 알코올로 복수를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개 짜증나는 어른들의 눈을 속이면서 말야.

거지 같은 선생님들도 짜증나는 엄마 아빠도.


나중에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후에 내가 졸업한 이 중학교에서 토익 시험을 쳤을 때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때 오랜만에 가 본 학교는 정말이지 허망할 정도로 작았다. 내 기억에는 거대하고 넓기만 했는데. 학교는 운동장도 좁았고 교실의 층고도 너무 낮았다. 화장실도 작고 좁고. 이런 닭장 같이 비좁고 어두운 곳에서 나와 내 친구들이 소중한 인생의 3년을 썩혔다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복수에 눈이 먼 이 소녀들은 몰래 집에서 술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물통이나 텀블러에 담아오면 이게 물인지 소주인지 보리차인지 누가 알게 뭐람. 그렇게 우리는 학교 화장실 혹은 옥상과 이어지는 계단 어디쯤에 있던 아지트에 술을 숨겨두고 돌아가면서 술을 자주 마셨다. 순번도 화장실 가는 타이밍도 매우 야무지고 신중하게 질서정연해야 했다. 그렇게 겹치지 않게 돌아가면서 즐겁게 소녀들은 적정 수준의 알코올을 즐겼다.



주종은 주로 매실주, 맥주, 소주, 복분자였고 와인이나 사케는 없었다. 소녀들이 즐긴 술은 도수가 낮고 저렴한 가정용 술들이 대부분이었다. 다행히 이 공범들에게 술을 마시고 울거나 토하거나 혹은 소리지르는 주사가 없어서 이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얼씨구 즐겁구나! 이대로 꾸준히 나와 친구들은 학교에서 술을 즐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났을까? 생각지 못한 변수가 나타났다.



우리 무리 중 한 명에게 술을 적정량 이상 마시면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지고 혈압이 오르는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주사가 없고 술을 마셔도 얼굴색이 변하지 않았는데 정말 딱 한 명에게 그런 증세가 있음이 발견되었다.

그럴수록 더욱 조심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적정량 이상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 그 애는 그날따라 기분이 좋았는지 좀 많이 마시고 돌아왔고 화장실 가기 전에는 백자처럼 하얗던 얼굴이 툭 치면 터질 것 같은 토마토가 되어서 돌아왔다. 그리고 계속 실실 웃는 게 아닌가!  



‘오 주여, 예수님, 관세음보살님, 정신 차리자 슬아!!’



슬이를 뺀 나머지 공범들은 일순간 모두 긴장 상태였다. 나는 속으로 울면서 텔레파시를 계속 쐈다.


‘슬아 그냥 웃지마 제발. 책으로 좀 가려봐. 들키면 다 뒈지는겨’


하지만 슬이의 얼굴은 더욱 더 빨개졌고 그녀의 이상 증세는 계속 심각해졌다. 그리고 그녀의 터질 것 같은 얼굴을 드디어 선생님이 목도하고야 말았다. 내 기억에 개그맨 맹구를 닮아 맹구라고 불리던 사회 선생님. 정말로 학생들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는 게 늘 느껴졌던 그녀의 맹한 시선이 갑자기 슬이한테 향했다.



우리 공범들은 숨을 죽였다.

아 이제는 다같이 뒤질 일만 남았구나 하며

나는 나의 얄팍한 가슴팍에 십자성호를 그었다. 아-멘.



무표정한 얼굴의 선생님이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 얼굴이 왜 그러니? 어디 아프니?”


슬은 미소만 짓고 대답을 하지 못 했다.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너 괜찮니?? 얼굴이 왜 술. 마.신. 사.람. 처럼 벌겋니?”


아아아 제발, 제발, 제발.


나는 너무 긴장돼서 숨이 다 막혔다.


교실에 갑자기 총질이 시작되기 전 서부 영화 급의 긴장과 적막감이 흘렀다. 

싸늘했다.

내막을 모르는 다른 애들은 킥킥 웃고 공범들은 웃지 못했다.

그리고 이때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슬이의 명연기가 시작됐다.

정말로 자연스러운 프로의 연기, 슬이는 마땅히 이 재능을 살려 배우로 데뷔했어야 했다.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 선 채로 이마에 손을 짚으며) 서..선생님 제가 열이 나서 감기약을 먹었어요. 근데 이게 흐으으 그래도 자꾸 계속 열이 나고 머리가 너무 너무 아파요. 혹시 조퇴를 해도 될까요 병원에 가야할 것 같아요ㅠㅠㅠ.”



아... 미쳤네 미쳤어. 그 애가 미친 애라는 걸 그날 처음 알게 됐다. 누가 봐도 저건 어딘가 아픈 가녀린 소녀였다.

어떻게 이토록 자연스러울 수가 있지? 어디서 연기를 배운 건가?

교실에 쌓였던 그 싸한 긴장감이 한 방에 해소됐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슬이는 계속 머리가 아프다는 연기를 이어나갔다. 천만다행이었다. 사회 선생님은 얼른 그녀의 조퇴를 허락했고 슬이는 짐을 싸서 그 김에 냉큼 집으로 도망갔다. 그리고 수업은 다시 이어졌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그날 하루가 마감됐다.




아아... 성이 이씨였던 그 선생님은 혹시 상상이라도 했을까?




멀쩡한 대낮에 소녀들이 학교에서 몰래 달콤한 매실주를 즐겼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그녀의 제자들이 화장실에 숨어 안주도 없이 홀짝홀짝 술을 마셨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아니면 그녀 생각에 왠지 이 학생이 술을 마신 것처럼 보이지만 귀찮은 일에 연루되기 싫어 그 애를 그냥 내보냈을까?

혹은 그냥 모른 척 눈을 감아준 것일까?

어쨌든 이 일은 내 친구의 미친 연기 덕분에 혹은 선생님의 깊은 자비심 때문에 혹은 만성적 귀찮음 덕분에 유야무야 잘 넘어갔다.

(참, 슬이는 나중에 사범대에 진학해 국어선생님이 됐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 이후로 우리의 학교 음주 작전은 끝이 났다.

일단 소녀들은 외부에 들킬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그때서야 느끼고 처음으로 공포심을 느꼈다. 만약에 들키면 혹독한 처벌과 동시에 학생기록부에 안 좋은 이야기가 적힐 일이었다.

나중에 이 빨간 줄 때문에 고등학교 못 가면 어떡해?

나 외고 가야 되는데 상고 가게 되면 어떡해?


완전 무서운 일이었다.

단 한번도 남의 돈 뺏어본 적 없는, 그저 교복치마가 길고 화장기 없는 얼굴의 모범 소녀들에게 학생부 그리고 내신성적에 대한 공포는 호환마마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그 와중에 가장 용감했던 나의 절친 두 명이 거의 동시에 해외 유학을 가버리는 것도 일조해 그 누구도 이후에 몰래 술을 학교에서 마시지 않았다.



물론 그 후에도 나는 몰래 어딘가 음산한 곳에서 다른 친구들과 술을 자주 마셨다. 하지만 그 음주가무의 장소가 학교가 아니게 되자 더는 재미가 없어져 그 짓도 멈췄다. 술은 역시 학교에서 교복을 입고 몰래 마셔야 제 맛이었다. 또한 우리 부모님이 자녀의 음주에 꽤나 관대한 편이어서 엄마 아빠랑 겸상하면 술을 조금씩 마실 수 있는 집안 분위기도 몰래 하는 음주를 그만두는 데에 한 몫 했다.




그 후로 시간이 꽤 흘러 술에 대한 자유가 주어진 대학교 초반에는 술을 진짜 무식하게 많이 마셨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나는 종종 수업 중에 그냥 자거나, 혹은 도서관 소파에 대자로 누워 있거나 학교 앞 보석불가마에 드러누워 술기운을 해독하며 지냈다. 하도 불성실한 게 티가 나서 내가 나타나면 담당 민법 교수님이 흰자를 드러낸 도끼눈을 하고 늘 노려봤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렇게 진짜 무식하게 술을 마시고 놀러 다녔더니 나중에 위에 천공이 생겨 강제로 술을 끊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마셔보니 술이 별로 재미가 없어져서 나중엔 그 횟수를 줄이게 됐다.


술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할, 몰래 마실 필요가 없는 것이 되어서 금기를 어기는 재미가 덜해졌다. 그리고 술이 더 이상 망각의 기쁨을 주거나 갑자기 샘솟는 용기의 원천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내가 술을 마시는 일이 더더욱 줄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몇 번의 투병생활을 거쳐 지금의 나는 중학생 시절보다 술을 더 못 마시는 얄팍한 주량을 갖게 되었다.








요새 잼전훈련을 하면서 중학교 2학년때의 기억이 많이 떠오른다.





그때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며 물처럼 흐르는 대화와 욕설을 나눴던 내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가장 절친했던 네 명 중 하나는 미국에서 가서 정신병을 얻었고, 다른 하나는 ‘서울대’에 가더니 갑자기 사람이 변해버려 어느 날 갑자기 길에서 나를 만나도 아예 모른 척을 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한 명은 일찍 결혼해 지방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우리 소녀들에게 아마 열 다섯 살이라는 나이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사회의 낡고 오래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노선.



SKY 대학, 돈, 성공과 취업과 커리어, 한국 사회가 선호하는 남성상과 여성상 같은 늙고 병든 믿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기회.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뇌와 몸을 병들게 하고 오염시키는 그 믿음들을 거부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역병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중학교 때 음주 말고도 교무실에서 소소한 절도를 저지르기도 했다. 교감선생님 뒤에 학생들의 증명사진이 붙은 책자가 있었는데 오며 가며 그 당시 학교에서 잘생기고 인기 많은 오빠들의 사진을 수두룩하게 훔쳐 그 오빠들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선물로 줬다. 나 역시도 내가 좋아한, 강타를 닮은 오빠의 사진을 가졌지.


물론 그 사진은 절대로 떼면 안 됐지만 나는 교감이 있든 없든 빠른 손으로 에헤헤 웃으며 사진들을 뜯어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들을 직접 때리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으니 그냥 내 식으로 작은 엿 먹이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종종 즐겼던 사소한 비행들. 하지만 열 다섯 살이 지난 이후부터 세뇌 당한 나의 뇌에는 외고, 대학, 성취 밖에 없어지게 됐다. 몸 역시 책상과 의자에 묶여 꺾이고 굳었고 그렇게 나는 한국형 좀비로 성실히 잘 자라났다.



그렇게 소녀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좀비가 되었고, 그 후 사소한 비행은 자취를 감췄다.

대신 야동의 취향이 점점 하드코어해졌지만.



정말이지 나는 단 한번도 의문을 갖지 않았다.

인생에 다른 길이 있을까? 의심한 적도 궁금해한 적도 없었다.



넷플릭스 영화 ‘화이트 타이거’에서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닭장에 빗댔는데 딱 그 표현이 맞다. 도살을 기다리는 닭들은 앞에서 동료들의 목이 잘려나가지만 그 닭장을 나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제격이다. 나 역시 탈출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대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세뇌를 당해도 나의 본성은 변할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성질. 

그래서 인생의 어느 시점 이후 내가 세뇌당했다는 것을 자각한 뒤 나는 어떻게든 조금씩이라도 세상의 가치관을 거스르려 시도하고 또 시도하며 살고 있다.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다.


무엇을?


너무 낡고 썩은 시체 냄새를 풍기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그리고 이 가치관에 물들어 내게도 그것을 전염시키려고 하는 좀비들을.



하지만 나는 은근하게 꾸준히 이 가치관들과 세상에 저항해볼 셈이다.




열 다섯 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이 소녀의 눈에 나는 만족스러운 어른일까?


교복 입고 술을 대낮에 살 정도의 광기라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많이 미쳐도 될 것 같다.




열 다섯 살의 브리는 서른 다섯 살의 브리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려나.


열 다섯 살의 소녀는 입만 열면 쌍욕이 이과수 폭포처럼 터졌는데 왠지 이렇게 툭 내뱉을 것 같다.






“아 이 씨발년이 덜 미췄네. 아나 쌍년아 씨발 더 미쵸 뒈져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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