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전해질 수 있다니

by 탐구생활 posted Jan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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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연말은 가족들과 처음으로 끝장 토론을 벌였었어.

알면 알수록 내가 모르던 사건들이 우르르 튀어나왔고

그럴수록 나는 더 깊게 우물을 팠어.

 

내 어린시절의 한켠을 장식했던 아빠의 신경질, 고함과

엄마의 비명, 흐느낌은

 

서로의 성향, 성격 차이를 알지 못함,

말을 주고 받고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의 다름,

마음을 열려는 자와 열지 않으려는 자의 부딪힘,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려기 보다는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바쁨,

상대방의 사정을 이해하기 보다는

본인의 상처가 보다듬어 지기를 바람

 

등의 이유로 발현된 것이었어.

 

그렇게 우중충하고 지치고 힘든 가족 모임을 가지는 건 19년 연말을 마지막으로하고

20년 연말에는 좀 더 가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보기로했지.

 

이번엔 동생이 차를 뽑아서 처음으로 아빠차가 아닌 동생차를 타고 여행을 갔어.

아빠, 엄마는 뒤에서 편안하게가고 앞에는 동생과 내가 탔지.

아빠는 운전을 좋아한다더니 막상 뒤에 앉아서 가니까 편안해서 좋다고 하더라.

할아버지가 된 것 같아 슬펐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책임감을 지고 살았을까 싶었어.

 

포항에서는 아주 좋은 숙소에 묶었어.

호스트가 얼마나 꼼꼼한지 집 구석구석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어.

냉장고는 먹을 걸로 가득 차 있었고

손으로 직접 쓴 맛집리스트만 봐도 시간이 가는줄 몰랐어.

오디오와 CD가 있어 음악 감상을 하기도 했고

맛있게 항정살 구워먹고 차마시고 여유로운 연말을 보냈어.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새해의 해를 맞이했어. 물론 사람이 없는 곳에서 말이야.

죽도시장에서는 수율 100%라는 말을 믿고 대게를 먹다가 보니까 살이 없어.

그래서 엄마가 항의를 하러가고 발끈하는 상인이 엄마와 같이 오자 아빠가 같이 싸워주기도 했지.

 

다음은 경주 한옥 마을에 갔는데 기특하게도 동생이 보드게임을 가져와서

가족이 같이 게임을 했어. 가족사에서 최초로 있는 일이었어.

제목은 '내 마음을 맞춰봐 딕싯' 그림 카드를 보고 상대방의 마음을 유추해보는 게임이야.

 

아빠가 엄마랑 의외로 잘 통하고 잘 맞추더라고.

그래서 엄청 좋아하더라.

그렇게 웃는 모습 처음봤어.

 

아 근데 아빠가 최근에 인상이 엄청 좋아졌어.

예전에는 항상 신경이 예민해서 인상 쓰는 얼굴이었거든.

그게 항상 안타깝기도하고 불만이었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아빠 얼굴이 폈더라.

진짜 신기했어.

 

아빠 말로는 그 때 일감도 좀 따고 벌이가 좋아서 그랬다는데

그게 맞을 수도 있겠지.

 

서론이 너무 길었다 ^.^

재미도 없을 거 같은데.

 

쨋든 경주 갔다가 대구 집으로 돌아와서

이시가리라고 줄가자미회가 비싼데 맛있다하더라고

그래서 먹어봤는데 진짜 고소하니 맛있었어

비싼 돈 주고 먹을만하더라 또 먹고 싶네.

 

가족들과 보내는 연휴 마지막 날이 되었어.

아침에 엄마가 밥을 차려줬거든.

근데 엄마가 밥을 다 차려주고 우리가 먹고 있는데도

계속 안오고 막 김치를 썰고 뭘 하는거야.

 

나는 만연화된 그 분위기가 너무 싫었어.

왜 엄마는 스스로를 가족에게서 떼어놓을까.

가족이 밥을 먹으면 다 같이 동시에 먹어야지

 

우리 엄마 뿐만이 아니라 다른 엄마들도 자주 그럴거 같애.

너희들 먼저 먹어라 그러면서 말이야.

 

나도 집에서 손님들에게 식사대접해봤지만

원래 손님들도 세팅이 다 될때까지 안먹고 기다린단 말이야.

 

나도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밥 먹으면 다 같이 먹고 싶은데

그 시간을 스스로 깎아버리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어.

 

그래서 내 생각을 엄마에게 얘길했지,

엄마는 대답하길 '이거 금방하는 거야~' 이렇게 얼머부렸지.

 

나는 또 얘기했지 '나도 굳이 집에와서 이런 불편한 얘기 꺼내놓고 싶지 않다.

나도 친구들이랑 놀면 깔깔거리면서 놀 수있는데 왜 여기 와 있겠느냐.

일년에 며칠안되는 시간인데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게 싫다'구

 

엄마는 쓸데없이 또 '친구'라는 단어에 꽂혀서 '무슨 친구?' 이렇게 물어본다...

그러더니 왜 그렇게 엄마에게 불만이 많녜

그냥 엄마를 그런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주면 안되겠녜

 

근데 그러면 내가 가족들이랑 대화를 단절했던 시기랑 다를바가 없는걸.

내게서 생기는 감정과 생각을 회피하고 흘려보낼수록 그것들은 더 내 머릿속을 멤돌고

가족들과 있는 시간을 불편하게 만들게 뻔한 걸.

 

여기서 아빠가 얘기를 시작해. (아빠 말 겁나 많아 시작하면 안 멈춰서 죽겠어)

 

'탐생이가 왜 시간을 내서 여기를 왔겠냐, 왜 엄마, 아빠한테 자꾸 잔소리를 하고

싫은 소리, 불편한 소리를 꺼내겠냐.

 

엄마, 아빠가 답답한데도 불구하고 왜 중간에서 귀찮은 짓을 하겠냐,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겠냐.

 

요즘에 이런 가족이 없다. 서로 대화도 안하고 자기 살기 바쁜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노력해주는게 고맙지 않냐. 그래서 나도 아무말 안하고 따라주는 것 아니겠냐.

 

어떻게 보면 이런게 바로 사...사랑이 아니겠냐 아이고'

 

사랑을 얘기하면서 아빠가 흐느꼈다.

동시에 나도 울컥했다.

 

아니 나는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말 한적이 한번도 없는데.

그리고 나조차도 이걸 사랑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고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내가 엄마, 아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게 아닌데.

 

근데 아빠는 이걸 사랑으로 느끼고 있다니.

너무 고마웠다.

내가 허튼 짓, 이상한 짓 한게 아니구나,

잘 하고 있었구나.

아빠에게 인정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나의 행동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표현하라하고 서운해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가 있구나.

물론 아빠의 사랑을 내가 어디가서 바라면 안되겠지만.

와 그래도 이런 일이 있구나.

 

사랑이란게 내가 굳이 증명하려 애써도 되지 않는거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피는 못 속이다는 말도 떠올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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