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불안녀의 고해성사

by 민트지니 posted Mar 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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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연애 불안, 섹스 불안 끝판왕이다.

사실 그뿐만 아니라 내 인생 구조도를 뇌구조도처럼 그려본다면 불안감만 99.99...퍼 가득 차 있겠지..

내 속에 있던 이 불안 폭탄이 어제.. 터져버리고야 말았다.


나는 본격 폭탄 터지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어디 내놓고 말하면 누구라도 욕할 것 같아 차마 꺼내지 못했던 유치하고도 수준 낮기 짝이 없는 내 속의 이야기를 해본다. 이야기 말미로 갈수록 너무 쪽팔려서 민망하지만. 나 이렇다 공개하면 폭탄 제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답답한 마음으로 시작해본다.




*
나는 만난지 3개월쯤 된 남자가 있다. 


같은 직장에 다니며 2년을 봤고 서로 호감 정도 있었는데 올해 삘이 통해서 연애를 해버렸지..


'우리 오늘부터 1일' 이런건 애초에 없었고, 나도 그럴 생각 전~~~~~혀 없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연락이나 만남이 초반엔 좀 어색했지만 평소 서로를 신뢰하고 있어서 그런지 즐겁고 설레는 기분이 더 컸고... 재미있었다!!



밤마다 온갖가지 주제로 신나게 생각을 주고받으며 톡을 했다. 특히 그는, 하는 일과 어울리지 않게 '시'를 몹시나 좋아해서 나와 함께 여러 시에 관해 생각과 느낌을 나누었고, 우리는 잊고 지냈던 문학 감성에 다시 취하게 된 것에 기뻐했다.


그는 술에 취해 잠이 들면 새벽에 깨어 톡으로 시 한편과 함께 이런저런 혼잣말을 남겨두곤 했지..

시 뿐만 아니라 소설, 음악, 철학 등등 여러 분야에 대해 지식이 얄팍하더라도 각자의 생각들을 공유해갔다. 우리는 거의 매일 새벽 세 시 넘어까지 톡을 했고 밤마다 나누는 우리 이야기가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 같다며 함께 즐거워했다.


나는 평소 일기를 써왔기 때문에 이 남자를 만나며 느꼈던 감정, 나의 생각들을 매일 일기장에 적었고, 그 사실을 남자에게 이야기했다. 남자는 내 눈에 비친 자신이 어떤지 무척 궁금해 했다. 내 기분 땡기면 한 구절씩 공개했었지ㅋ



나는 사실 이 남자에 대한 일기를 쓰며 네 번 정도 대성통곡을 했다.

이유는 다 비슷했다.

내가 좋아한다며 설레발치고 까불었지만 가만히 날 들여다보니.. 내가 그 사람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다는 허탈함이 불쑥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솔직하게 다가오고 있는데 나는 속에 불안 폭탄을 비롯한 갖가지 부정적인 것들을 꽉 들어앉힌 채로
겉으로는 상냥한 척, 쾌활한 척 웃으며 원래 좋은 여자인 듯 연기한다.


이 불안한 구라가 얼마나 갈 것이며..

저 사람은 나를 착하고 이쁜 소녀 같다며

늘 그렇게 살아가라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데

하아... 눈물이 뚝뚝뚝... 심장이 죄어오는 통곡을 했다..

그리고 일기장에 썼다. '이 남자가 그만두자고 하더라도,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오늘의 이 느낌, 이 마음, 이 기억을 꼭 떠올리며
이 사람을 절대로 미워하지 말자.. 



더는 부끄럽고 싶지 않다. 이 사람이 옆에 없더라도 씩씩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정말 제대로 살자..' 


이렇게 세 번 정도를 더 새벽마다 울었다.



이 남자는 그리고..


정말 쎈쓰없지만 로맨틱한 일기장 이름을 하나 지어줬다.

'별 헤는 밤'...이라고...


나는 언행에서 감성이 느껴지는 남자를 좋아해서 이 남자 참 감성이 살아있는 남자란 생각에 점점 더 설레고 마냥 달아올랐다.
스킨십 없었던 아주 초반에도 나는 나름 아주 응큼 앙큼 찐득~한 눈빛으로 남자를 응시했고 결국 우리는 키스... 애무.. 그리고.... 우주여행 시작~



그 남자는 처음부터 모든걸 다 하려 하진 않았다.


첨엔 키스.. 가슴 애무까지..


며칠 뒤 보지 애무까지...

그리고 또 며칠 뒤 자빨을 원했고..

그 며칠 뒤 드디어..

나는 그남자 다리 위에 앉아서 내가 원하는대로 놀기 시작했다. 참 좋았지.. 절대 안빼고 싶어서 나중엔 섭섭할만큼..

떡리뷰가 아닌지라 떡 묘사는 잠시 접어두고..


문제가 서서히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 남자와 정서를 나누고 정신적(?)으로 공감하며 지낼 동안은 뭐에 홀린 마냥 들떠서는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들어도 그냥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애무가 점점 깊어지고 섹스를 하게 되면서 나의 불안 폭탄 심지에 불이 붙기 시작한거다.


하아... 섹스 후 자주 찾아오는 이 미친 불지옥이란..


이 남자와 몸이 만나게 되면서
현타 아닌 현타를 겪게 되었고
 남자 지금 나랑 뭐하자는거지 하는 불편한 생각이 올라왔다.

'오늘부터 1일 따위는 유치해서 안하지만

나를 지속적으로 열렬히 만나겠다는 약속에 준하는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 표현은 있어야 되는거 아니야?!!'

...... 안다.... 이 생각, 촌스럽고 6세 아동스럽다는 것...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를 향한 남자의 강력한 구애(?)적 표현이 생략되면 순식간에 그 남자를 믿지 못하게 되버리는 몹쓸 증상이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못 믿는 수준이 아니라 강도를 당한 듯한 억울함과 함께 오만정이 떨어지는 싸늘함을 느낀다..





내게 빠져들어서 매일을 황홀경 속에 사는 듯한 남자를 보면 재미는 없지만 마음이 평온했다.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라면 자기 여친과 끝내고 내게 오거나 여친보다 나에게 훨씬, 더욱 집중한다는 걸 느껴야만 마음이 시원했다.


그렇다고 이 남자들과 오래 만나는 것도 아니었지. 길어야 3,4개월 바짝 만나고는 끝내버렸다. 만날수록, 섹스를 할수록 그 남자가 지겹거나 혹은 처음 열렬했던 남자의 마음이 사그러드는 듯한 상황이 불안하고 싫어서 갑자기 이별의 말 꺼내기.. 저 기간보다 오래 만난다면 그냥 허울뿐인 관계..


이 미친 증상이 또 발현된 것이다.


이번에 만나는 남자와는 내 기필코 불안증을 가라앉히고 내 한계를 넘어 보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내가 그 남자의 정신과 몸을 모두 좋아하고 있다는 걸내 스스로 잘 알고 있고, 오다가다 만난 낯선 남자가 아니라 2년 간의 친분으로 높은 신뢰가 깔려있는 관계임을 발판 삼아 이번에는 반.드.시. 안정스럽고 낭만적인 진짜 사랑을 해보겠다 각오했건만.....




무너졌다. 

나는 또 '우리의 애매한 관계'라는 장애물에 꽂혀버렸고
혼자 며칠을 고민하고 억울해하다가 결국 남자에게 말해버렸다.

"우리 왜 만나는 거야...?"


그 남자는 나에게 그냥 이대로 만나면 안되냐고 되물었고


나는 답을 모른 채로는 답답하다고 했다.


다시 남자는 나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지 말라며

서로 좋아하는 감정으로 그냥 만나면 안되느냐 말했다.

게다가 코로나 블루 증상인 것 같다고.. 집에서 안좋은 생각만 자꾸 하게 돼서 그런 것 같단다. 헐...



이 상황에 침착하게 그런 말을 하다니... 


그것도 나는 이상하고 약오르고 얄미웠다.

할 말이 없었다... 말해봤자 똑같은 말 반복이니까.



사귄다는 표현은 필요없지만 좋아한다고, 나는 너를 정말 좋아한다고 걱정하지말란 이 한마디면 진짜 걱정이 없을텐데...  왜 더욱 애매하게 억지 궤변 같은 말만 늘어놓는걸까?



요즘 이 남자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저~기 위에 적어놓은 나의 꿈같은 러브스토리는 칙칙한 악몽으로 변해가고 있다.. 모든게 의심스럽고 부정적이다. 몸이 섞이면서 나에 대한 열렬함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쉽게 만질 수 있으니 애틋함이 사라지는건가? 


이 남자 결국 섹스가 궁극의 목적이고 대화 따위는 작업이었던가?

침착하게 섹스 진도 빼는 것도 자기가 싫증 안내려는 계획이었나?

본격적으로 섹스도 하기 전에 애무 몇 번 하면서 갑자기 '사랑해' 뱉았던 것도 이상했어.. 지금 타이밍에 사랑?? 뭔 되도 않는 뜬금포 감탄사? 내 몸을 사랑한다는 말이었나?



아 씨... 또 칼 빼들고 무자르듯 쳐내야 하나....

그러기 싫은데...

하지만 그냥 참고 만나자니 점점 더 그 남자가 겁나 뻔뻔하고 미워 보이는데...





하아...


이거 분명 나의 어떤 문제로 이런 상황이 오게 된 것 같고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지.금. 꼭 짚어내야만 연인이든 친구든 직장 동료든 진짜 제대로 관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그 남자에게 카톡이 왔다.


매일 밤 12시 언저리가 되면 무슨 뻐꾸기 시계처럼 규칙적으로 온다.

얼마전부터 나누는 대화나 만남에는 이전에 불꽃 튀도록 열심히 나누던 정서적 교감이나 홀린 듯한 애정 표현은 점점 빠지는 것 같다. 그저 하루 안부를 묻고 일상적인 이야기 몇 마디에 잘자 인사..




야, 할 말 없으면 뻐꾸기 시계처럼 의무 톡 하지마라고!!!

말하려다가 한번 꾹 참았다... 얄미워.. 열받음..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재미있게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엊그제보다는 좀 분위기가 나은 듯...


이것도 나 때문인건가?? 내가 기분이 안좋아서 나도 모르게 분위기를 조지고 있는걸까??? 그 남자는 그 자리 그대론데?? 아니야... 달라.... 내가 지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는 것 같은데..


억울하고 초조하다.

못된 생각일 수 있지만, 이 남자와의 만남에서 관계에 대한 깨우침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에 내 성깔대로 쉽게 집어치우자 말도 못하겠고..


이렇게 답도 없이 하루 이틀 보내는건 불지옥에 사는 것 같고..

맨 처음 이 남자가 왜 자기가 좋은지 내게 물어봤을 때 나는 아주 당차게 이렇게 말했지.


'당신은.. 내가 나를 알 수 있게 해줄 것 같아서'

나의 초심은 어디로 가고...

아니, 나의 썩어빠진 못난 모습을 정확히 직시하게 된거니

목표 달성인건가...








나는 이 남자를 보내고 나 혼자 열심히 나를 갈고 닦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걸까?
 


이 남자가, 혹은 다수의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궁극의 목적이 섹스, 아니 성욕 해소라고 생각하는 나는..

내가 남자를 만나는 궁극의 목적은 무엇일까?


사랑받는다는 안정감을 느끼려고?

남자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소유하면서 만족감을 느끼려고??



이 남자가 관계를 정확하게 짓지 않아 불안하단 얘기를 쓰다가 내가 남자를 만나는 목적까지 오다니. 난 그럼 이 남자를 송두리째 가지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까 승질 난건가... 내가 남자를 이제껏 만나온 패턴은 소유였던가...





하지만 원나잇도 아니고.. 애인이라면서 쌍방에 대한 약간의 구속은 필요한 것 아닌가?


첨에 유혹할땐 오만가지 립서비스와 행동, 표정으로 꼭 연애하는 것처럼 사람 마음을 잡아놓고는 결국 애매하게 흐지부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그럴거면 애초에 그냥 우리 떡치자고 솔직하게 말하고 떡친구나 되던지!


차라리 그런 남자는 다른 기대가 없으니까 깔끔하게 만나고 끝냈는데 아오... 이쒸..


지금 새벽 다섯시 오십분..

점점 집중이 흐트러진다.

미친듯이 민망한 이 고해성사 같은 글을 남기고 이렇게 찜찜한 채로 오늘은 그냥 잠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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