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기 달인

by 모솔인척 posted Jan 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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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초코에 꼼꼼히 읽어야하는 책을 훌렁 훌렁 읽고 나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부터 감정을 억제 하면서 살았지?”

억제하는 감정은 너무 많았다. 그중에서도 오늘 가장 강렬하게 생각난 장면은 이 장면이다.
이제 곧 설날이 다가와서 그런 것 같기도하다.

#1
대전으로 가는 차 안이였다.
엄마는 명절에도 일하는 마트에 다녀서 오지 않았다.
여동생, 남동생,나 그리고 아빠가 대전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휴게소에 내려서 맥반석 오징어를 먹는 것이다.
깜깜하게 어두워진 밤이였고, 날씨는 추웠던 것 같기도하다.
차안에 앉아 있는 우리 셋에게 아빠가 물었다.

“뭐 먹고 싶은거 없냐?”

다들 눈치만 보는 와중에 남동생이 아빠에게 말을 했다.

“닭다리 먹고 싶어.”

나와 여동생은 남동생을 째려보면서 “눈치없게.” 라고 말했다.
아빠는 여동생과 나에게 물어 봤지만 없다고 했다.

아빠는 닭다리 세개와 맥반석오징어 알감자를 사왔다.

어린 나와 여동생에게는 항상 “돈”이라는 것이 마음을 조였던 것 같다.
우리집이 가난하다고 생각은 안했다. 하지만 엄마는 늘 “돈, 돈, 돈”을 말했다.
그래서 항상 돈에 나는 조급했던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때 우리집이 가난하다고는 생각 안했지만, 자랑할만큼 산다고는 생각 안했다.
우리집은 18평 5층짜리 계단만 있는 아파트였고,
친구들은 24평 이상의 20층 가까이 되는 높은 층이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였다.
난 그래서 한번도 친구를 우리집에 데려온 적이 없다.
우리집 1층에 살던 미은이만 우리집에 놀러 왔다.

전세집도 아니고 월세집도 아닌 엄마아빠 돈으로 산 집이였어도 나는 항상 돈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32평 아파트를 한채 샀고, 빚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에
새벽에는 신문을 돌렸고, 낮에는 까루푸에 다녔다.
우리아파트 지하실에 엄마는 남는 신문을 모아서 폐지모아가는 아저씨에게 팔아 부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엄마가 아무리 “돈,돈,돈.” 거려도 아빠는 달랐다.

어린이날, 생일날이면 항상 갖고 싶은 걸 사주셨다.
하지만 갖고 싶은 걸 사러 가도 가격이 눈에 걸려 잘 고르지 못할 때면,

“여기서 제일 비싸고 좋은 걸로 주세요.”

항상 제일 잘나가고 비싼 걸로 샀다.
그것이 마이마이여도, 인라인스케이터여도, 자전거여도, 전자사전이여도.

엄마의 빚없이 큰집으로 이사가기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아빠의 직업특성상 인테리어 하시는 분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 제일 좋고 비싼 것들로 집을 꾸몄다.
벽지, 바닥, 몰딩, 소파, 책상, 침대. 온갖것들로 채워도 나는 친구를 단 한번도 집에 데려온 적이 없다.

왜냐면 엄마는 그 큰집에 가서도 “돈,돈,돈”을 말했기때문이다.

그렇게 내 몸 속에는 속내를 잘 들어내지 않는 숨기기 달인의 기본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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