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비극의 끝을 찾아서.

by 탐구생활 posted Jan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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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말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문제 상황을 잘 풀어내지 못하는 이유를 나에게서 찾는데 한계를 느꼈고

그래서 생각 났던 것이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이 갈등을 풀거나 원만히 대화를 하는 것을 한번도 목격하지도 전해 듣지도 못했다.

궁금했다. 부모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것을 왜 해결하지 못했었는지.

 

나를 통해서나마 부모님이 끝까지 대화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거기에 내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도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나는 큰 아들이고 부모님은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가족을 아끼며 관계를 개선하길 원한다.

나의 남동생 또한 마찬가지고 남동생의 성격 또한 원만해서 중간 다리 역할을 아주 부드럽게 잘 해낸다.

 

그리하여 부모님 댁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도착.

엄마에게 부탁했던 가자미 요리를 먹으며 가족들이 마주했다.

처음 엄마에게 요리를 부탁한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내가 대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항상 겉도는 대화를 반복한다.

그럴 때 진지한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괜히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다.

 

이 글의 서론과 같은 얘기를 했다. '부모님이 행복한 모습을 보고서야 나도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부모님은 이 문장을 감내하는 것을 힘들어 했다. 항상 내가 저런 식의 말을 하면 부모님은 예전에 비해 잘 지내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서로에게 지쳐 문제를 회피하고 있을 뿐 잘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네 가족은 한 자리에 모여 가족의 근원적인 문제가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찾아가기 시작했다.

단편적인 문제를 꺼냈다. 명절마다 할머니 집에 가기 전에 생기는 긴장감, 그것은 아빠의 신경질과 인상, 그리고 엄마의 무던함과 조급함이었다.

아빠는 10분만에 갈 준비를 마치고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는 여러가지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아빠는 기다리다가 성에 못이겨 인상을 쓰며 밖으로 나가고 엄마는 아빠 눈치를 보며 준비를 계속하는데 할 게 많다.

그래서 출발할 때 아빠는 항상 신경이 예민한 상태이고 엄마는 아빠를 아빠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동생과 나는 그 상황에서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이 단순한 문제가 30년 가까이 반복되었다.

 

나는 화가 났다. 엄마 아빠가 이 문제를 방치시킨 탓에 나는 매번 나쁜 영향을 받았고 나도 그 문제를 밖으로 꺼내지 않았기 때문에 속으로 삭혔다.

30년 가까이 삭혔던 울분이 튀어나왔다. 아빠는 한숨을 쉬었고 엄마는 황당한 눈빛, 걱정스럽고 방어적인 표정으로 나는 보았다.

엄마는 나에게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면 안된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화나는 이유를 설명하며 정당성을 말했고 엄마만의 잘못을 탓하려는게 아니라 답답함을 토로하는 것이라했다.

 

대화가 이어졌다. 아빠는 엄마가 나올 타이밍을 보고 밖으로 나가는데 기다려도 나오지 않으면 짜증이 난다고 했다.

엄마는 준비할게 많다고 했던가... 요즘에는 시간 맞춰 나가기로 약속을 했다는데 아빠는 그 시간마저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로에게 너무 관심이 없고 대화도 없는 것 같았다. 이 문제는 정말 시간을 정해놓고 잘 지키기만하면 되니 넘어갔다.

 

대화가 계속 이어졌는데 이런 자잘한 문제들만으로는 정말 문제거리들만 자꾸자꾸 나오는 것 같았다.

특히 아빠는 한 번 말을 시작하면 사소한 것까지 방대하게 얘기를해서 끝이나지 않아 어려웠다.

평소에 말을 잘 하지 않는, 말에 대한 결핍이 있는 아빠의 말을 자르기도 주저스럽고 계속 듣고 있자니 진전 없이 시간을 까먹고 있어 답답했다.

 

아빠의 말을 끊고 아빠에게 이런 문제들이 생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나 사건이 있냐고 물었다.

아빠는 질문에 수긍하며 머뭇머뭇 있다고 답했다. 엄마도 아빠와 같은 사건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가 엄마와 결혼 할 때 자신이 '부상당한 장군'이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이 표현은 엄마와 아빠의 갈등을 얘기할 때 정말 자주 언급되었다.

아빠의 근원적인 문제는 이것과 관련이 있었다.

 

아빠의 긴 얘기가 시작됐다. 얘기인 즉슨 아빠는 사역에 대한 큰 꿈을 안고 있었고 A 교회에서 총망 받는 청년이었다.

그러다 탄탄대로를 벗어나 B 교회로의 이동, 힘든 길을 선택했다. A 교회 사람들은 아빠가 가는 것이 못 미더웠는지

B 교회에 이상한 소문을 낸다. B 교회의 목사님이 아빠를 꼬드겨서 데려갔다는 소문이었다.

그 때문인지 아빠는 B 교회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고 심지어 B 교회 목사님에게 불려가 교회 활동을 쉬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거기서 아빠는 무너졌다. 아빠가 억울하게 모든 활동을 접어야 했을 때 아빠 주변 사람들은 아빠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고 아빠 주변에 아빠 편이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데모 등으로 인해 대학생들은 모두 진지하고 심각하고 나라를 중시하던 시대 상황이었다. 그래서 개인의 사정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던 시대였던 것 같다.

짧게 정리했지만 구구절절한 아빠의 얘기는 1시간 가량 이어졌던 것 같다. 그 구체적인 얘기는 엄마 조차도 정확하게 몰랐다고 했다.

아빠와 엄마는 이런 상황 속에서 만났고 아빠는 엄마가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부상당한 장군'이라 소개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빠는 이 얘기를 하다가 눈물을 보였다.

아빠의 눈물은 처음 봤다. 울 수도 있는 사람이었구나.

눈물의 의미는 그 당시 아빠의 억울함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었는데 지금껏 아빠는 그 억울함을 얘기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게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에서야 두 아들과 부인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얘기를 구구절절 얘기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아빠는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간절이 필요했던 것이다.

 

저녁을 먹으며 시작한 얘기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아빠의 눈물 덕에 분위기는 꽤 숙연해졌고 내 생각보다 대화는 깊이 들어갔다.

가족들도 긴 대화에 지쳐서 첫 대화는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다음 대화는 가족 여행지에서 이루어졌다.

한적한 산청의 호텔에서 역시나 식탁에 둘러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심각한 얘기는 안하고 아빠가 고민을 꺼내놓았다.

앞으로 명절 때 친척들과 어떻게 모일 것이냐 하는 고민이었고 나에게는 그리 심각하지 않아보이는 문제였는데 아빠는 이것 때문에 혼자 1년을 고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한 사건을 언급했다. 집에 오고나서 있었던 작은 일인데 나에겐 굉장히 중요했다.

여행 오기 전날 아침 나는 먼저 깻고 동생은 자고 있었다. 엄마는 미리 일어나 교회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자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형 일어났다~'하며 방에 불을 켰다.

동생은 더 자고 싶어 했는데 굳이 깨우는 것도 이해가 안 됐고 더군다나 나를 언급하며 깨우는게 너무 싫었다. 엄마에게 왜 사람이 자는데 불을 켜는지 물어봤다. 것도 나를 언급하며.

엄마가 멋적은 웃음 소리를 내며 말하길 엄마가 드라이기를 쓰려고 불을 켰단다... 나는 엄마에게 따졌다. '그럼 드라이 좀 한다고 깨우면 되지 왜 애꿎은 나를 언급하는 것인지, 그게 사람을 얼마나 짜증나게 하는지 아는지'

엄마는 회피용 웃음을 장착하고 알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나는 이게 내가 엄마에게 가지고 있는 짜증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엄마가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다른 핑계를 대는 것'

그리고 나도 엄마와 비슷한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엄마에게 불만을 품는 것 같다.

 

이 사건의 재언급을 엄마는 요리조리 피해갔다. '원래 드라이할 때 불 켜면서 동생을 깨운다.

근데 동생이 잘 안일어나니깐 '형 일어났다~'하며 깨운거다.'라 답했는데 정확하게 딱 꼬집을 수가 없었다.

 

 

아빠에게 지적을 했던 것도 기억난다.

아빠가 자기가 느낀 엄마에 대한 아쉬움에 대해 얘기하면 엄마는 표정이 매우 어두워진다.

그 때 아빠는 엄마를 보고 얘기하지 않는다. 거의 눈을 감다시피하고 자기 얘기에 몰입하는데 사실 대화를 해야할 대상은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는 아빠의 말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빠에게 말할 때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피면서 하라고 말했다.

기분 나쁠 수도 있을 텐데 아빠는 좋은 지적이라며 멋적은 웃음을 지었다.

 

 

엄마에게는 집안일에 관해 묻고 싶었다. 엄마는 20년 동안 집안일을 묵묵히 해왔다. 집안일의 힘듦에 대해서 가족들에게 어필하지도 않았고 그저 했다.

무척이나 피곤한 표정과 지친 표정으로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꼭 아침밥을 해줬다. 엄마가 집안일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본인의 일이 있음에도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몇년 전 까지만해도 거기에 대해 나는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엄마가 얼마나 꾸역꾸역 참으면서 일해왔을지 조금이나마 느껴진다.

고마우면서도 한편은 그렇게 본인을 혹사시키면서 일을 해왔던 엄마에게 의문이 든다.

 

그래서 엄마에게 어떤 심정으로 지금 껏 집안일을 해왔는지 물었다.

엄마는 사명감으로 했다고 말했다. 물론 즐겁지 않았지만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나는 엄마의 그 몸고생 마음고생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거라, 그리고 함부로 이해하려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빠는 달랐다. 엄마의 그런 집안일에 대해서도 아빠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빠는 엄마가 집안일을 해주는 걸 바라지 않았다고 했다.

먹고 싶지도 않은 밥을 자꾸만 차려서 음식물 쓰레기가 생기게 되는게 불만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차라리 밥을 차리지 말라고까지 얘기했다고.

 

나는 정말 이상했다. 아니 저번에는 아빠가 모든 갈등의 시작이 되는 사건을 풀어놓고 눈물까지 흘렸으면서 아직까지도 이렇게 대치하는 것이.

촉이 왔다. 본질은 그게 아닌 것이다. 교회 사건은 아빠와 엄마 사이의 일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가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내가 얼핏 들은 사건이 하나 있다.

엄마, 아빠의 남녀관계와 얽힌 사건. 그걸 언급했다.

 

그 얘기가 나오자마자 엄마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고 아빠도 우물쭈물했다.

그래 이거였다...

신실한 교회 신자인 엄마, 아빠도 성에 관련한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럴 수록 성이 더 문제가 됐을 것이다.

부모님을 포함한 우리 가족은 30년 만에 처음으로 이 문제를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 엄마 아빠는 결혼을 한지 몇년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엄마는 아이를 유산하고 친정에 내려가 휴식을 취하던 상태였고 아빠는 타지에서 교회 사람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공동체는 자매들도 함께였다. 한 크리스마스 이브 날 어떤 자매가 아빠 혼자서 생활하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아빠의 옆에 누워 아빠를 껴안으려했고 아빠는 그것을 뿌리치고 나가라고 얘기했다.

아빠는 이 불미스러운 사건을 심히 우려했다. 왜냐면 그 자매는 이전에도 연인 관계 사이에 끼어들어 관계를 망쳐버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는 불안한 마음에 곧장 엄마를 찾아가서 사건에 대해 얘기했다.

 

엄마는 임신 중독 후에 쉬고 있는 상황인데 뜬금 없이 아빠가 나타나 '이런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별 일 아니니 안심하라'고 하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매에게 찾아갔고 그 뒤로 아빠를 계속 추궁했다. 엄마는 아빠가 말한 것 외에 다른 일이 더 있었을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가 그 자매에게 이상한 얘기를 들었을거라 생각하고 엄마에게 줄기차게 자신의 결백함을 얘기했다.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불미스러운 일을 지인들에게 알리면서까지 자신의 사정을 말하고 다녔고 엄마는 그런 아빠가 더 미워졌다. 엄마, 아빠의 치부를 퍼뜨리고 다니니깐.

 

엄마는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자매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기억을 못했다.

그리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몹시 답답해하고 그런 엄마의 무던한 모습에 울컥했다. 왜냐면 아빠는 그 자매가 엄마한테 했을거라고 생각한 얘기 때문에 몇년... 아니 30년 동안 한을 품고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썅년에게(썅년이 아깝다) 화가났다. 그년 한명 때문에 엄마, 아빠의 관계, 생활 뿐만 아니라 가정까지 피폐해져서 나와 내 동생이 피해를 봤다.

엄마 아빠에게 화가 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엄마는 그 친구가 불쌍하다고 했다... 엄마가 불쌍한게 아니고?

 

그년이 만들어낸 문제는 엄마, 아빠의 삶 전체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아빠는 엄마를 붙잡고 호소하고 사정하며 결백을 주장했다.

엄마는 알겠다고 용서한다고 아빠를 믿는다고 말을 했지만 아빠에게 밥을 차려주는 엄마의 태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아빠는 말한다.

그럼 아빠는 다시 엄마를 붙잡고 사정을 했다. 엄마는 힘에 못이겨 알겠다고 하지만 속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게 아니었고 이것이 계속 반복되었다.

 

엄마는 아빠에게서 받은 상처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엄마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는데 아빠는 그 문제를 바로바로 해결해버리려고 엄마를 몰아세웠다고 한다.

엄마는 나름대로 아빠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인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상처를 치유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빠는 그 상태를 견딜 수 없었다.

 

이게 반복되자 아빠는 엇나가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호소를 하다가 안되니 엄마를 자극했다. 언성을 높이고 엄마를 쏘아붙였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와서 집안일을 끝 마치고 잠들려는 엄마를 붙잡고 계속해서 얘기를 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이끌려 비몽사몽인 상태에서도 아빠의 얘기를 듣기만 하였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아빠에게 그만하라고 얘기하지도 못했고 듣는 척만하며 있었다.

아빠는 마치 벽에다가 대고 얘기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엄마에게는 어떤 얘기를 해도 엄마는 자신을 이해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렇게 엄마는 점점 지쳐가고 아빠는 광기에 사로잡혔나보다. 아빠가 엄마를 몰아세워 엄마가 공포에 질렸었는데 아빠가 정신이 나가 칼을 들었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가 아무리해도 얘기를 듣지 않으니 자극적인 방법을 시도한 것이었고 엄마는 그저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대로 엄마의 언니에게 달려가 아빠가 한 일에 대해 얘기한 것 같다. 엄마는 기억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의 언니는 아빠에게 물었다. 자기 동생에게 왜 칼을 들었냐고.

 

아빠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었다고 한다. 아빠 자신도 그런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했다.

자신의 결백함과 억울함을 그 어느 곳에도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누가 보아도 아빠는 광기 어린 사람으로 낙인 찍혀버렸다고 아빠는 생각했다.

 

그런 시기에 나의 누나가 태어났는데 누나 마저 아빠의 실수로 이불을 잘 못 덮어 죽고 말았다.

그 다음 태어난 게 나다.

 

엄마는 일을 나가야했고 나는 아빠의 손에서 길러졌는데 아빠는 거의 폐인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저녁이 되면 시내 다방으로 가 TV를 봤다고 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린 아빠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고 의욕도 없었다.

 

엄마는 그래도 그 때 내가 태어난 것이 축복이고 엄마의 행복이라고 했다. 엄마도 의지할 곳이 아무 데도 없었으니까.

 

내가 어릴 때 아빠는 나를 공원으로 자주 데리고 갔는데 그 때 아빠가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으냐고 물어봤을 때 내가 엄마라고 대답하지 않고 아빠라고 대답한 것이

아빠는 그게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지지하고 함께하려는 마음에서 부모님이 만나고 결혼한 것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내어준 것인데

실제 부모님의 삶은 외롭고 처절하고 누구하나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얘기를 털어놓을 친구나 친척도 없었다. 부모님은 고향을 떠나 타지로 와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하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꺼내고 나눌 줄도 몰랐다.

 

그 당시의 엄마 아빠는 내 나이 또래였을 것이다. 그 때의 젊은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애잔하다. 지금 환갑이 넘은 엄마 아빠가 아니라 당시의 30, 사회 초년생이자 이제 막 가정을 이룬,

서툴고 어리고 여린 엄마 아빠는 몹시 나와 가깝게 느껴진다. 그런 엄마 아빠의 모습은 상상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하니까 아빠는 방황하다가 친구 횟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엄마는 내 동생을 돌보느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몇 년후에 사업을 시작했다.

엄마 아빠는 20대 시절에 나름 잘 나가던 사람들이었다. 그 자부심이 아직도 있다. 교회에서 촉망 받고 엄마 아빠를 따르던 청년들도 있었다고 한다.

주변에서도 큰 일을 할 부부라고 기대를 많이 했었다. 그러나 하나의 사건이 있은 이후로는 줄 곧 내리막 길을 걸었다.

잘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고 항상 먹고 살기 급급했다. 그럴 수록 엄마와 아빠는 교회를 찾았고 하나님을 찾았다.

 

그런 환경에서 나는 방치되다 싶이 자랐다. 엄마 아빠는 나에게 부족하지 않은 환경을 제공하려고 노력했고 그러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아이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의 얘기를 들을만한 여유가 엄마 아빠에게는 없었다.

아빠는 사회에서는 매우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동시에 엄마에게는 예민하고 신경질 적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이끌지 못하는 가정을 뒷받침하느라 벅찻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엄마 아빠는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채 30년의 세월을 보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가족 관계에서 공허감을 느꼈다. 나의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는 가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20살이 되어 독립을 하면서 뚝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10년 후에야 다시 가족의 필요성을 느껴 돌아왔지만

우리 가족은 30년을 잃어버린 샘이다.

 

엄마에게 중요한 얘기가 하나 더 있다.

엄마는 어릴 적에 친모를 잃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그 때 계모가 왔고 계모는 배다른 자식인 엄마와 엄마의 언니를 구박했다.

엄마가 휴대폰을 휴대폰이라고 말하면 계모는 그건 휴대폰이 아니라 수건이라며 구박했다.

엄마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에 그런 구박을 당하다가 교회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듣고 거기에 꽂혔다.

그래서 계모를 이웃처럼 사랑하는 방법으로 무조건적인 수용을 택했다. 계모가 휴대폰을 보고 수건이라면 '수건이구나'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엄마의 언니는 엄마와 다른게 계모와 싸우고 집을 나갔으나 엄마는 그럴 힘도 깡도 없었다.

 

그런 사랑 없는 사랑이 엄마의 인생 모토였다.

엄마가 아빠와 결혼할 때는 아빠에게 '원수를 네 이웃 같이 사랑하라'가 자신의 모토라고 말했단다.

나는 엄마의 평소 행동이 꼭 그렇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감정과 의견은 접어버리고 영혼 없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해버리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야금야금 아빠를 갉아먹었다.

 

아빠는 엄마를 대할 때 마치 자신이 원수가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아빠 자신이 엄마의 계모가 되어 버린 것 같다고 그걸 이제서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 동안 엄마 아빠 탓을 많이 했지만 이제 얘기를 다 듣고나니 그럴 수가 없다.

누구보다 힘들었던게, 인생을 낭비했던게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네 가족이 모두 한 팀이 되어 서로서로를 이해해주고 함께 나아가야지

지금이라도 그렇게 마음이 모여서 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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