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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비 선장님하고 통화를 했다.

시작은 내 운동일지였으나 나중엔 보티첼리의 비너스 의 탄생으로 넘어갔고,

감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영화 ‘대부’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그는 여자인 내가 대부를 좋아하는 것이 매우 신기하다고 얘기했다.

보통의 여자들이 이입하기 힘든 영화라며 굉장히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반응하는 그가 난 더 재미있었다.

이게 왜? 어디가 신기하지? 대부는 계속 봐도 지루하지 않은 영화 아닌가?


대부 영화가 왜 좋았는지 내게 묻는 그에게

나는 ‘마이클 꼬를레오네’에게 이입해서 영화를 봤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는 생각지도 못한 관점으로 내가 대부를 좋아하는 이유를 자기 입장에서 분석했다.


정장을 빼 입은 마피아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

정장을 입고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며 위장을 하는 사내들의 이야기.

어쩌면 그 마피아 세계의 수장인 대부에게 내 아버지를 투사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그는 넌지시 얘기했다.

나의 의식이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무의식이 선택한 영화.

아버지에 대한 결핍, 충족, 투사.


그렇게 선생님과 꽤 오랫동안 대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좀 더 자세히 대부와 내 무의식을 파헤치고 싶었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 대부 1,2,3을 몰아보며 내린 결론.

대부는 내 무의식을 그대로 반영한 나의 이야기였다.


내가 영화를 통해 엿본 아버지의 세계이자 내가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그대로 담은 나의 이야기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각 세대 별 대부를 보며 느낀 연민과 분노는 내가 아버지에게 품었던 감정과 결이 비슷했다.

참, 그렇다고 해서 아빠의 직업이 조폭이나 마피아는 아니다. 

소위 사람들이 몹시도 좋아하는 '사짜 붙은' 특정 직업 중 하나이다.



1. 어린 시절의 기억

어린 시절 독일에 살 때 아빠와 그 동료들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다.

그 동료들은 전부 양복을 입고 안경을 쓴 딱히 특징은 없는 얼굴들이었다.

남자들은 모여서 포커를 치며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은밀한 이야기를 나눴고,

아내들은 따로 모여 음식을 준비하며 아내들끼리 놀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모여 놀았다.


대부 영화를 보면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모여 방 안에서 비즈니스를 논의하고,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모여 비즈니스가 아닌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모여 어른들 세계의 밖에서 논다.

내 기억 속 남자/여자/아이들이 나뉘는 모습이 영화와 비슷했다.


참! 저 포커를 쳤던 아저씨들은 나중에 모두 시기를 달리하며 아빠의 뒤통수를 치고 배신했다.



2. 청탁과 경청

언젠가부터 아빠에게 뭔가를 부탁하고 요청하는 청탁의 전화가 매일 걸려왔다.

대부분은 아빠에게 도움을 요구하는 남자들의 전화였다.

아빠는 그런 전화를 받으면 굉장히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하고 관심을 기울이며 어떻게든 자기 일처럼 방법을 찾아내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 목적 없이 그저 아빠의 안부를 궁금해하거나 존재에 관심을 둔 사람은 있었을까?

늘 주변에 사람은 많아도 아빠는 혹시 쓸쓸하지 않았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무튼 늘 다른 사람의 일로 바쁜 아빠.

그렇지만 그에 비해 가족들의 이야기는 그다지 경청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는 가족들에게 질문이 없이 그저 늘 바쁘고 또 바빴다.

얼굴보기 힘들 정도로.

내가 생각하기에 아빠의 진짜 패밀리는 집 밖에 있는 것만 같았다.


영화를 보면 사람들은 대부에게 늘 각종 청탁을 한다.

이런 일 저런 일… 대부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고 대부는 상대방에게 기꺼이 도움의 손을 내민다. 

하지만 영화 속 대부는 찾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집중해서 들어주지만

자기 가족들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경청하지 않는다.


뭣보다 대부는 비즈니스 외엔 질문이 없다.

아내들에게도 역시 질문하지 않는다.

아내들은 극중에서 주방, 침실에 주로 등장한다.

역할이 그렇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무슨 대화가 필요해?


자식들에게도 대부는 질문하지 않는다.


나중에 1대 대부의 막내아들이 그 자리를 물려 받았을 때도

아버지는 질문은 없이 자식에게 수직적으로 인생과 비즈니스에 대해 그저 가르쳐줄 뿐이었다.

'친구는 가까이에 적은 더 가까이에'



3. 외모와 정장

아버지는 평생 정장을 입고 똑 같은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며 사셨다.

내가 만일 35년 이상 늘 비슷한 옷을 입고 똑 같은 머리를 하면 분명히 미칠 것 같은데, 아버지는 그걸 해내셨다.

신뢰감을 주는 정장, 말끔한 머리, 단정한 얼굴, 비싼 시계, 기사 딸린 차.

아빠 뿐만 아니라 그 동료들의 외모도 비슷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피아들도 말쑥한 차림에 깨끗한 얼굴이지, 거렁뱅이처럼 옷 입고 다니는 사람은 1도 없다.

그렇게 깨끗한 외모를 하고 뒤에선 각종 정치 싸움과 살인을 밥 먹듯이 하며 대외적으로는 사람들을 속여왔다.

하지만 난 그 정장에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빠는 정장을 벗으면 집에서 늘 런닝셔츠와 파자마를 입고 있으며

쉬는 날엔 면도를 하지 않고 아무데서나 방귀를 뀌며 프리하게 있기 때문이다.


옷, 시계, 구두는 그저 위장술임을 나는 아빠를 통해 보고 배웠다.



4. 자수성가

1대 대부는 9살에 홀로 미국에 이민을 와서 세상을 개척해나간다.

그리고 구멍가게 수준으로 시작한 올리브유 사업을 마침내 거대한 조직 비즈니스로 키워냈다.


아빠 역시 너무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서울대 대신 전액 장학금을 주는 학교를 선택했다.

그리고 아무런 빽도 서포트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힘으로 자신의 콤플렉스였던 가난을 극복해냈다.

정말 악조건에서 아빠는 자기 삶을 개척해냈다.

그렇게 죽을 각오로 일을 하지 않으면 그 가난을 극복할 수 없었겠지.

내게 있는 아빠에 대한 깊은 연민과 존경은 이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5. 딸의 메시지

알 파치노가 연기한 마이클 코를레오네는 마지막에 결국 딸을 잃는다.

그는 딸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늘 의식이 비즈니스와 자기 자신에 더 많이 쏠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비즈니스를 견고히 유지하고 더 돈을 벌고 조직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게

가족을 지키는 방식이라 믿었지만 결국 그가 틀렸다는 걸 본인 눈 앞에서 딸이 총을 맞고 죽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이게 내가 아빠한테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다.


아빠, 계속 그렇게 살면 아빠도 역시 딸자식을 잃을 거에요. 더 늦기 전에 나를 좀 보세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빠의 질주는 자신이 속한 비즈니스의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단 두 칸을 남겨두고 강제로 멈추게 됐다.

아빠가 몸 담았던 ‘패밀리’의 수장이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아주 어이없는 비리를 저질러 그 라인 전체가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피라미드 꼭대기를 차지한 자는 아빠와 경쟁하던 패밀리의 수장이었다.


그러나 최종 승리자는 피라미드를 설계하고 소유한 사람의 진짜 가족인 사위,

서울대를 나왔다던 그 사람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갔다.


더 이상 상승을 할 수 없는 때가 되자 아빠는 아주 천천히 시선을 자신의 내면과 가정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인지 그 시기와 맞물려 나는 퇴사를 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아마 아빠의 질주가 끝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영화의 결말과 우리 부녀의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거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쓰고 보니 대부는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이상으로 내 무의식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었다.

대부는 나와 아빠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내 무의식의 남성은 결론적으로 말끔한 마피아였다.

이건 실제 직업이 마피아 라는 뜻이 아니다. 속성이 그러하다는 것.


말끔하고 단정한 옷, 착해 보이는 얼굴과 목소리, 좋은 직업과 예의 바른 태도. 

정작 그들은 극도로 수직적이고 마초적이며 피라미드 꼭대기로 질주하는 사람들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

강력한 수직적 힘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 그렇지만 겉으로는 젠틀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


내가 좋아했던 남자들은 결국 아빠와 비슷한 속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국적과 나이 직업과 외모가 달라도 그들은 결국 말끔한 마피아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비록 여자지만 대부 영화를 볼 때마다 그 장면 속 인물들에게 흡수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이유였다.

내가 비슷하게 체험해 본 사람들이니까.


물론 알 파치노의 극강 연기와 코폴라 감독의 천상계급 연출과 적절한 음악도 한 몫을 했지만...




이제 대부는 단순히 내 취향인 좋은 영화를 넘어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더욱 내 경험이 풍부해진 후에 또 다른 영화가 내 리스트에 오르길 희망한다.


내 무의식에 자리잡은 말끔한 마피아 말고, 

사람과 주고 받는 교감과 인생의 즐거움을 알고, 가끔 긴장을 풀고 즐겁게 춤을 출 줄 아는

새로운 얼굴이 무의식에 찾아와 반갑게 인사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마피아 말고 다른 얼굴에 내 무의식이 반응 하기를...




  • profile
    모솔인척 2021.03.02 16:58
    대부 감독님이 브리님의 이 리뷰를 보았다면
    진짜 감동과 감사함이 가득 했을 것 같아요.

    영화 자체로 좋아하는 것보다.
    자신의 이야기처럼 생각해서 좋아해준다는 건
    감독에게는 엄청난 이야기의 꾼의 성공일것 같거든요.




    이런거 보면, 인생 영화는 각자 한편씩 갖고 있는 것같아요.
    몸이 알아서 반응 하는 그런 영혼을 울리고 흔드는 영화요.
    오랜만에 저도 제 인생 영화 리스트 다시 한번 봐야겠어요!!
  • profile
    브리 2021.03.02 17:27
    to : 모솔인척
    모솔인척 님의 인생영화는 어떤 이야기일까~ 어떻게 연관이 되어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이렇게 보니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아주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아 저랑, 아빠, 제 남동생 공통의 영화가 또 대부 입니다ㅋㅋ
    셋이 전부 대부 매니아에요.
  • profile
    밤비 2021.03.02 20:41
    제가 읽어본 가장 내밀한 영화 리뷰입니다.

    이 명문을 꼬옥 온 가족이 함께 읽어보고 토론해보셨으면 합니다.

    요즘 가장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바디감 묵직한 와인도 곁들여서,

    가족 모두가 이미 아는 이야기에 대한 브리님만의 새로운 고백을 다들 경청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_*
  • profile
    브리 2021.03.02 20:47
    to : 밤비
    감사합니다ㅎㅎ 선생님 덕분에 제가 대부와 제 무의식을 엮어서 볼 수 있었어요!
  • profile
    밤비 2021.03.02 23:04
    to : 브리
    하정우를 비롯해 수많은 영화계 종사자들이 최고로 꼽는 영화지만,

    참고로 저에게는 도무지 몰입할 수가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어요:)
  • ?
    기안 2021.03.09 02:43
    브리님, 글이 이제야 읽혔어요.
    네모 반듯하게 써내려간 듯한 글,

    공중에 붕붕 떠다니지 않고
    얌전히
    종이에 앉아있는 글,
    내게 술술 잘 읽히는 글이었어요.

    나는 다른것보다

    사회적으로 저렇게 멋진 성취를
    한 아버지가 있고
    그걸 보며 자란 딸은 어떤 기분일까 싶네요?

    엉뚱한 데에 반응하고 있지만
    대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나는 이제야 겨우 조금씩 밤비님이 하는 말,
    밤비님의
    통찰력을 인정할수 있을 것같은 기분이에요.

    예전에는

    밤비님 글도

    이해가 잘 안됐었고,

    다른 여전사님들의 리뷰들도
    이해못하는 부분들이 많았었어요.

    까만 건 글자, 하얀 건 종이라는 생각이 드는
    글들이 많았어요.
    마음으로 그려지지 않는 글들...,


    그런데
    브리님 글이 차분하게 읽히니
    다른 글들도
    읽히리라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 profile
    브리 2021.03.10 16:21
    to : 기안
    이렇게 정성스럽게 댓글을..^^ 영화 대부는 총 3부작으로 되어 있어요.
    시간 되실 때 꼭 한번 보시길 추천드려요.

    아버지의 사회적 성취를 보면서 자란 딸...
    일단 아버지라는 존재는 제게 정말 넘을 수 없는 너무 큰 벽인 동시에 제가 의지하는 든든한 언덕이기도 했고요.
    아버지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좋든 나쁘든 많이 해볼 수 있었다는 것?ㅎㅎ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 ?
    되어지다 2021.03.13 20:08
    대부라는 영화가 명작이라해서 보려했는데 저는 시대도 너무 옛날이구 남자들의 이야기가 와닿지 않더라구요
    브리님의 글을 읽다보니 다시 한번 대부를 보고 싶기도 하네요
    브리님깨서 대부에 이입할 수 있었던 이유가 굉장히 날카로워서 감탄했어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profile
    브리 2021.03.14 19:26
    to : 되어지다
    감사합니다ㅎㅎ

섹스 상처. 섹스 서운해. 그가 미워. 다 말할래.

읽기 : '해적단' / 쓰기 :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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