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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간 후 처음 돈을 받고 일한 곳은 학교 앞 종로김밥이었다.

 

 

그곳에서 서빙과 주방 보조 그리고 배달을 했는데 알바는 처음이라 초반에는 버벅거리고 주문 실수도 내고 그랬다.

그러면 주방 이모가 그렇게 나한테 쌍욕을 하면서 갈궜던 기억이 난다.

이모가 도끼눈을 뜨고 에이 씻팔 하는 쌍욕이 모욕적이었지만 어이없게도 나중에 그 주방 이모랑 너무 친해져서 학교 졸업 하고도 가끔 그 이모를 만나러 찾아가기도 했다. 내가 찾아가면 이모는 두 팔 벌려 나를 꼭 안아줬다. 

 

(참, 이곳에서 일한 후 절대로 배달에 딸려오는 단무지를 먹지 않게 됐다. 여러분도 먹지 않길 바란다)

 

 

 

대학 졸업 후 정식으로 취직한 직장은 대기업 극장 체인이었다.

본사에 가기 전 약 8개월 동안 극장에서 매니저로 일해야 했는데, 그때 정말 갖은 종류의 진상을 다 만나보면서 모욕적인 순간을 많이 겪었다. 돌이켜보면 진상의 약 80%는 남성이었다.

영화가 재미 없다는 이유로 갑자기 뛰쳐나와 로비에서 복고풍 쌍욕을 퍼붓던 어버이연합 할아버지도 떠오르고 술 취해 집단으로 싸우고 토하고 난동 피우다가 도망간 미군놈들도 생각난다. 그 미군놈들 주변에 앉았던 사람들이 찾아와 떼로 항의하던 모습이 선명하다.

 

 

그리고 아직도 생각나는 굉장히 평범한 인상과 체구의 남자 인간. 

약 30분 넘게 티켓박스에서 나를 붙잡고 조곤조곤 갈궜던 기억이 난다.

 

 

"아.. 정말 답답하군요. 그쪽은 지능이 그것밖에 안 돼요? 왜 그렇게 무식해요?"

 

 

정말 갈등했다. 티켓박스를 뛰어 넘어가서 무전기로 줘 팰까? 그리고 그만둘까?

살인이 이렇게 해서 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못 하고 그 진상 조팔놈을 달래서 보낸 후 선배 매니저 손을 잡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매니저의 개좆같은 위로도 생각난다.

 

"아야 니는 참으로 마음이 연악하데이. 그래 연약해서 어찌 살겠노."

 

 

하지만 이것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두 번째 회사에 취직한 후의 일이다. 사내방송을 만들던 나는 계열사 임직원들을 데리고 매번 영상을 찍어야 했다.

찍는 사람도 힘들고 찍히는 사람도 싫은 그런 일.

 

아무튼 연말 특집이라 각 부서의 사원, 대리급의 젊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새해 인사 그런 걸 촬영하는 날이었다.

굉장히 간단하고 짧은 촬영이라 부담없이 갔는데 이상하게 자꾸 NG가 났다. 

그래도 계속 분위기를 업 시키고 잘했다 칭찬하면서 이끌어가는데 갑자기 어떤 여자가 이런 말을 했다.

말투가 뭐랄까 굉장히 재수가 없었다.

 

 

"(한숨 짜증) 아, 이거 아무도 안 보는건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거야~"

 

 

순간 머리가 멍 해졌다. 그 말을 내뱉은 여자 옆에 있던 남자가 당황하더니 아니 왜 그런 말을 해 다시 하자 혹은 빨리 끝내자 라는 말을 하며 내 눈치를 봤다.

 

 

한 3초 정도 고민했다.

저 년의 머리채를 뜯을까?

그리고 퇴사를 할까?

마이크 본체로 이마를 칵 찍어버릴까?

가서 오랜만에 쌍욕 좀 해볼까?

정말 가서 머리채를 잡고 흔들고 싶었다.

 

 

'어이. 이 개좆같은 씨발년아 누구는 좋아서 니네한테 이러고 빌빌 기는 줄 알아?'

 

 

앗 잠깐.

모욕적인 건 모욕적인 것이고 내가 이런 마음으로 비참하게 일을 하고 있구나.

처음으로 직시하게 되었다.

 

이 무개념 쌍년 덕분에 내가 '일'에 대해 진지하게 점검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 무개념 쌍년의 모욕 덕분에 내 삶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내 입장에서 나는 '사람들한테 빌빌거리며' 일을 하고 있던 것이다.

지금이야 야광기술 수업 덕분에 구심점이라는 개념을 알았지만 그때는 그저 내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라고만 생각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사내방송을 집중해서 즐겨 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클라이언트랑 높으신 어른들 빼고 임직원들이 신경써서 보지는 않지.

알아 나도. 그래서 애써 이건 영상으로 만드는 보고서야 보고서야.. 라고 최면을 걸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쌍년 덕분에 이 일의 본질이 드러나게 됐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정성을 들여도 이건 아무도 안 보는, 그냥 브금 정도로 사무실에 깔리는 것임을.

 

 

 

그때부터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내 일, 이 직장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이렇게 어렵게 좋은 회사에 취직했는데 왜 불행한걸까.

 

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중학생 때에 했어야 하는 고민을

 

혹은 스물 한 살에 김밥 배달하던 나이에 했어야 하는 고민을 스물 아홉살에 시작하게 됐다.

 

늦게라도 해서 다행인걸까, 아니면 너무 늦었던 것일까.

 

 

 

 

to be continued.

  • profile
    미야 2021.05.05 11:57
    정신과에서 하는말이 상처 준 사람은 이곳에 안온다. 상처 받은사람이 오는것이다 라는 말이 있잖아요.


    남에게 상처를 주고 공격적인 말을 해서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느끼게 하는말들. 그 강약약강의 정신머리를 잘 느낄수있는게 수직적인 회사문화에서, 서비스직에서 많이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말이라는건 그냥 뱉어내는게 아니라

    이 말을 하면 이 사람이 얼마나 상처가 될까 어떻게 받아들일까. 라는게 어느정도 생각을 하고 말해야하는것인데 말이죠.


    브리님께 상처주었던 사람들은 무례하고 무식하고, 회사의 그분은 프로페셔널 하지 못했던것이에요.


    특히 저도 그렇지만 말에 상처 잘 받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그런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게 맞는것같아요.


    그래서 저도 샵에 있을때 잘못 하지도 않은것을 죄송하다고 해야하고. 선배랍시고 자존감 깎아내리는 말들, 사람이 있는데 불 끄고 나가는 병맛같은 이지메 문화 등등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깨달은건


    내가 애써서 안되는 일에 스트레스 받지말자

    내가 그사람들과 잘지내려고 애를 써도 받아주지 않는다면 나도 포기할 수 있다

    그사람들은 나랑 잘 지내고 싶었으면 그런 행동을 할까?

    누가 위고 누가 아래임을 누가 정하는가.



    전에 일했던 그 직장들도 청담동 탑 3 로 불리는 샵이였고 입사하기도 어려운곳이였고

    제 첫 스승님 밑에서 일하고자 3-4년을 따라다니며 저를 PR 했지만 들어가기 어렵고 신의 직장이고 무슨 소용이에요~ 저는 참다가 나중에 스스로를 자학을 하고 자해를 하고 자다가 소리를 지르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울고 그랬거든요.

    내가 불행한데. 내가 괴로운데요.



    그래서 제 직업의 갈래를 선택할때도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로 전향 했나봐요. 이제 일에서 주체가 제가되니 너무 행복하고 한달에 한번도 안쉬어도 행복해요. 체력이 힘든것도 소중하게되네요. 

    내 미래를 위해서 오는 행복한 고통은 참아도
    이 직장을 버티려고 거지같은 상사에게 빌빌대는 고통은 참기 힘들짆아요.


    일을 왜 하는지 생각해보시면 좋을듯 해요

    자아실현을 위해 일 해야하는지

    성취감을 위해서 일 해야하는지

    돈을 벌기위해 일을 해야하는지

    누구를 위해 일 해야하는지


    등 등


    스물 아홉에 인생의 3막이 열릴 준비를 하고 계시는 브리님 화이팅~!
  • profile
    브리 2021.05.05 12:16
    to : 미야

    앗.. 지금 삼십오세 라는 함정이 ㅎㅎ

    심각성을 처음 느낀 게 스물 아홉이었답니다.



    미야님 전 직장 스토리도 너무 파란만장 하네요.

    예쁨, 아름다움을 만지고 다루는 사람들인데 이지메라니.

    불 끄고 나가는 치사함이라니!



    아이러니에요 ㅠㅠ


    미야님 스승님한테는 이 얘기 해보셨어요?

  • profile
    미야 2021.05.05 12:27
    to : 브리

     너무 동안이셔서 ㅎㅎㅎ29세 이신줄 알았네요 ㅇ ㅁ ㅇ!!


    전 스승님께는 이런 말을 할수없었고, 이야기를 해서 공감해주실분이 아니였고, 현 스승님은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회사에서의 힘듬을 솔직하게 잘 말했었어요! 어찌되었든 직장이였고 너무 얽힌 것들이 많아서 이야기 안하고 그만둔뒤 알아서 다른 기회를 찾아 떠난듯 해요.

  • profile
    금선 2021.05.06 14:07
    왜 이렇게 진상이 많을까요..

    특히 촬영하기 싫다고 나불대던 그 여직원은 정말

    기본적인 예의가 없네요.

    그 다음 글을 읽고 댓글을 이어가보겠습니다.
  • profile
    브리 2021.05.06 19:31
    to : 금선

    나불 ㅋㅋㅋ 적절하네요 ㅎ


    다음 글도 곧 써 보겠습니다

  • profile
    리얼리리 2021.08.16 22:05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데 왜 열심히 하냐고 하는 사람에게는 진짜 그만 두고싶은 마음이 드셨겠군요.

    누군하고싶어서 하는줄 알아요 . 라고 쏴대고 싶지만 브리님처럼 참는게 현명한것이더군요 들이받는것은 쉽지만 관계회복이 더 힘듭니다.

    지혜롭게 대처하는것이 저도 안됩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처럼 현명하게 답변하수있으실거라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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